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경 May 19. 2024

아이 생리를 대처하는 나의 자세




  팬티에 끈적거리는 갈색 물이 묻어났다. 이런 건 어디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거였지만 금세 뭔가 알아챘다. 열넷 나이, 팬티에 묻을 게 뭐가 있을까.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휴지로 견딜 있을까 불안해하며 돌아와 놓고도 한참을 엄마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괜히 준비하는 엄마 근처를 맴돌다가 겨우 "엄마, 생리해."라고 써놓은 쪽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한테 그냥 물어보고 생리대 있냐고,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봤으면 됐을 걸, 무슨 비밀스러운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요즘은 확실히 다르다. 생리라는 말 자체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 볼드모트처럼 입에 올리지 않고 올리게 되더라도 속닥거리는 소리로만 말하던 그때와는 다르다. 잼이는 벌써 학교에서 생리에 대해 배웠다. 물론 그 교육이 실제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시기가 빨라진 건 인정한다. 



  학교에서 생리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건너 건너 친구가 생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인지 잼이가 부쩍 생리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발달검사 후 진료를 하면서 의사가 이제 언제 생리를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고 말한 지도 벌써 거의 일 년이 되어간다. 그러니 나처럼 이게 진짜 생리가 맞나 의심하거나 부끄러운 일인 것처럼 말을 하지 못하지 않게 미리 다양한 정보를 알려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 생리혈이 나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냥 빨간색이 아닐 수 있다는 거, 흐르는 피 같은 질감이 아니라 끈적일 수 있다는 거, 그런 게 나오기 시작하면 양호실에 가서 생리대를 받아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려면 먼저 생리대를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려줘야 할 텐데 집에 생리대가 없어 우선은 패스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우리 때처럼 무조건 선택지가 생리대만 있는 게 아니다. 생리대, 생리팬티, 탐폰, 생리컵. 거기에 요즘엔 입는 생리대까지 나왔더라. 나는 생리를 흡수해 주는 생리팬티와 생리컵을 병행해서 사용한다. 꼬맹이들에게 질 안에 컵을 넣어야 하는 생리컵 사용은 무리일 테니 생리팬티를 권해주고 싶은데 생리팬티를 입으면 자기 생리 양을 측정하기 좀 어려울 것도 같다. 생리 주기동안 자신의 생리 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하는 게 어떤 방법이 나을지 선택할 때 중요하다. 기왕 하는 생리,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편하게 해야지, 그 긴 세월동안 하려면 말이다.



  보통 여자들은 30~40년을 생리를 한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정말 임신이 가능한 걸까. 이렇게 긴 세월 동안 고통받을 필요가 있나. 그냥 이대로 죽는 게 낫겠다 싶었던 고통을 안겨주었던 출산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잼이를 만났지만 잼이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애는 낳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생리도 그렇다. 나처럼 생리통과 넘쳐나는 생리 양 때문에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잼이의 생리를 미리 대비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어떤 방법이 가장 잼이를 편하게 해 줄까 하면서.



  계속 생리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건 생리 이야기면서 생리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부모가 겪은 고통을 자식이 겪어야만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자식이 겪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자꾸 말이 많아진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말이다.



  다른 고통들처럼 생리도 다들 자기만의 노하우를 찾아나간다. 내가 생리컵과 생리팬티, 그리고 생리 초반에 먹는 생리통약으로 마음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간 것처럼. 그런 걸 찾아나가는 걸 기다려줄 줄 아는 게 진짜 부모의 역할이겠지만 우선은 닥칠 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부터 하는 게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한 일이다. 생리만 생각하자면 요즘 달라진 생리용품들에 대한 정보부터 더 알아내야겠다. 입는 생리대가 있다는 걸 안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 존재를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오늘 글에 잼이와의 대화는 없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잼이의 존재감을 여실히 느꼈다. 방 밖에서 들리는 잼이가 애정하는 아이돌 노래, 잼이의 허밍, 콩이 부르는 잼이 목소리. 그런데 언제 잘 건데? "잼아, 이제 자야지!" 소리치니 너무도 얌전하고 고운, 아기 같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저런 아기가 곧 생리를 할지도 모른다고? 어머나.





잼 : 언제 생리를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여전히 아기 같은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Erol Ahmed




이전 18화 딸에게 착하단 소리 듣는 이유란 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