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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Feb 04. 2021

합리화를 위한 세 가지 이유

    사람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매일 글을 쓰는 것이 가진 유효성,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매일 글을 써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일 글을 쓰던 얼마 전의 저를 되돌아봐도 다시 고쳐 쓰고 고쳐 쓰는 과정이 없이는 제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퇴고 없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12월부터 시작된 머리 텅 빔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뭐 조금 잠깐 동안이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인을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로, 생각이 그냥 정말 없다.

그전에는 자려고 누우면 자꾸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 하루를 시달리다 이제야 충전기에 몸을 푼 핸드폰을 굳이 깨워 메모장에 쓰곤 했습니다. 요즘은? 아주 그냥 곤히 잘 잡니다. 사람들과, 가족과, 아이와 이야기할 때면 순간순간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저 하루 동안 다 채우지 못한 수다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을 못 만나니 이러겠지요.ㅜㅜ)


    두 번째로, 내 시간과 공간이 없다.

사람마다 스페이스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막 집에 돌아온 남편이 방에 들어가 있거나 주말 점심을 먹고 남편이 시야에서 사라져 방에 들어가 있으면 건들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정작 제 시간과 공간은 지켜지지 않네요. 특히나 요즘 그렇죠. 다들 그러시겠죠.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아이 위주로 돌아가고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짬이 나면 한숨 돌리기 바빴습니다. 아이에게 별 스케줄이 없으니 시간의 여유는 많아졌지만 오히려 제 마음은 여유와는 동떨어졌달까요. 기계적으로 숙제를 시키고 밥을 차리고 공부를 봐주고 밥을 차리고, 하루 일과가 늘어져 자는 시간마저 늦어진 아이 따라 돌봄 노동은 길어지고 별 일 없이 함께 늘어지고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합리화를 위한 중얼거림이 길어집니다. 생각해 보니 진짜 그러네? 하는 심정으로 여기에 토로하고 있어요ㅋㅋ.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아이 때문에 그동안 본방으로 못 보던 뉴스도 챙겨 보고, 멍하니 보던 넷플릭스 대신 시사나 책 관련 유튜브도 챙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할 일을 건강하게 만드는 루틴이라도 만들어보려고요. 


    앗, 세 번째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달리기 때문이다.

10월인가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런온>에도 나온 런데이 어플 덕분이었죠. 2분만 뛰어도 쓰러지던 체력을 끌어올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어요. 12월 강추위도 뚫고 옷을 겹겹이 껴 입고 주 3일 잊지 않고 나가서 뛰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더니 등짝이 아프고, 그러더니 무릎이 아프더군요. 그러더니 폭설이 이건 뭐, 너무 심하다 싶게 와대서 아예 달리기를 한동안 쉬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도 무릎이 낫지 않아 며칠 전 병원에 갔더니 제가 가진 근육 대비 운동량이 높았나 보다고, 그리고 특히 추운 날씨에 뛰지 말라고 하더군요. 뭔가 슬펐어요. 제 비루한 근육량도, 나를 이기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나가서 달리던 시간들이 통증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도요. 그리고 3월에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려고 했던 제 나름의 원대한 목표를 미뤄야 한다는 사실도요.

운동이 가져다주는 활력을 잃어버린 정도가 그저 운동하기 전이 아닌 더 아래, 더 아래로 내려가게 하고 있습니다. 나름 러닝 하이를 느끼며 운동하고 있었나 봐요.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도 되냐고 묻자 "꼭 달려야 하나요?"라고 묻더군요. 한 5초 정도 망설이며 생각했어요. 내가 꼭 달려야 하나? 언제부터 달렸다고 이러지? 그래도 망설인 5초 후에는 대답했습니다. "네."


    성공적인 합리화였습니다. 쓰고 나니 정말 이래서 그런 것 같은 기분이에요. 상쾌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해갈된 기분입니다.

    다음 글은 어떤 글을 쓸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는 글도 (제게) 좀 재미있었습니다. 눈길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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