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밖에서 커피를 사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왜 굳이 외출 때마다 내가 커피를 사 먹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를 살 거면 하나를 사서 나눠 마시자 했다.
커피 맛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임신과 수유 기간 22개월 동안에도 커피를 끊지 못했다. 불량한 것들 중 유일한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집에만 콕 박혀 있을 때에도 신혼살림으로 뭐하러 이런 걸 사냐는 엄마의 첨언을 뛰어넘어 장만한 캡슐커피를 꼭 내려 한 잔씩 마셨다. 아이가 낮잠 자는 꿀 같은 쪽 시간에 아이 물건으로 가득 찬 식탁 한쪽에 앉아 책 한쪽을 읽으며 커피를 내렸다. 기계에서 진동음과 함께 나오는 커피 내음을 마시고 혀로 쓴 맛을 핥았다.
뒤늦게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책 속의 인물이 움직이며 말하는 것이 오래간만에 신기했다. 연기를 잘해서였을까. 그래서 더 와 닿은 것일까.
김지영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디선가 그녀를 향한 화살이 날아온다. 세상 팔자 좋다는 말들. 그녀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 이번에는 김지영이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갔다. 아이의 실수로 커피를 바닥에 다 쏟아버렸다. 민폐네, 민폐, 저런 게 맘충이지. 이런 말이 또 화살이 되어 날아온다. 들으라면 들으라는 듯.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관계에서 갑인 줄 모르는 갑들은 말을 조심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커피를 살뿐인데, 그것이 그리 잘못된 일인가. 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잘못한 일인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에게 커피 한 잔의 값은 정말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인 건가. (정말 주부들의 일이 경제활동이 아닌지는 다시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아기를 키우면서 커피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었는지 내가 절절히 느껴서일까. 그리고 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을 때의 시선을 느껴봐서일까. 누가 나에게 저렇게 대놓고 맘충이라고 할까 봐 아이와는 되도록 카페에 가지 않아서일까. 아이와 함께라도 떳떳하게(?)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건 남편과 함께일 때뿐이어서였을까. 김지영이 마냥 김지영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슬펐다.
나는 카페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 전에는 물론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종종 혼자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것이 내게 도리스 레싱의 소설에 나오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공간, “19호실”이었다. 중독 같은 나의 19호실을 중단한 후로 나는 내내 사제 커피와 카페에 목말랐다. 삼십 분. 뜨거운 커피를 받아 적당히 식혀 다 마실 수 있는 시간. 딱 그 삼십 분만 있어도 스르르 녹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네댓 살일 때 큰 맘먹고 아이와 함께 카페를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과 색칠공부, 색연필을 들고 집 앞 카페에 갔다. 내 것으로는 아메리카노, 아이 것으로는 핫초코를 시켜놓고 둘이 마주 앉아 각자의 책에 시선을 두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얌전하게 잘 있었다. 다만 한 번씩 나를 부르고 할 말을 했을 뿐이다. 아이는 어른 보다 목소리가 크다. 엄마, 이거 칠한 거 어때? 카페에 있고 싶다고 그 정도 말하는 걸 못하게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주변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이가 입을 열면 고개를 들어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들이 눈으로 그 말을 쏘고 있었다. 맘충. 삼십 분을 버티지 못하고 아이와 나왔다.
그 한 번의 경험이 참 뼈아팠다. 19호실이고 뭣이고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나가는 날이면 나는 커피를 사 먹자고, 잠깐이라도 앉아있다 가자고 그렇게 시큰둥한 남편을 졸랐다.
코로나로 집콕하면서 가장 아쉬운 건 역시 커피였다. 아이를 키우며 경험했던 첫 번째 집콕 기간 동안 나는 물리도록 나의 캡슐 커피를 마셔댔다. 이번 집콕은 도저히 그것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는 큰 맘먹고 고르고 골라 모카포트를 장만했다. 남편은 모카포트로 끓인 커피가 맛있는지 모르겠다며 캡슐커피를 더 선호한다. 모두가 집콕하던 시절에도 남편은 회사에 대부분 나갔다. 아직 물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