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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선택지의 다른 결과

[9매]

by 이한얼






요리 방송에서 <1분 먼저 시작>과 <1분 STOP>이라는 규칙을 보며 재밌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내 결과물의 수준을 끌어올려 받는 이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 결과물의 수준을 끌어내려 받는 이에게 더 못한 경험을 제공하여 상대적으로 내 결과물을 돋보이기 위함이다. 아마 이 규칙을 만든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나는 저 <1분 STOP> 규칙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공공의 이익이 저해되어도 자신의 성공을 우선하는지’, ‘타인뿐만 아닌 자신의 창작물마저도 예술이 아닌 점수로 여길 수 있는지’ 등의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대한 냉소와 악의를 느꼈다. 반면 <1분 먼저 시작> 규칙에서는 경쟁임에도 양쪽 모두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는 배려와 관용이 느껴졌다. 규칙의 혜택을 받은 이가 경쟁에서 이겼을 때 ‘이겨서 기쁘기는 하지만 동등한 규칙이 아니었으니 다음에는 꼭 동등하게 다시 이기고 싶다’는 향상심을, 그리고 졌을 때는 ‘나도 그간 열심히 살았는데 혜택을 받고도 진 걸 보니 저 사람 대단하다’라는 존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규칙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도 ‘이 규칙 탓에 경쟁에서 불리해지겠지만 우리는 애당초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지 않았고, 하물며 조금 불리해진다한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건강한 자신감과 넉넉한 양보가 느껴져서 좋았다. 그렇게 이긴다면 이긴 대로 ‘역시 나는 열심히 해왔구나’라며 자신감을 얻고, 진다면 ‘동등한 조건이었다면 지지 않았을 테지만 다음에는 이런 조건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지’하는 향상심 역시 느낄 수 있다. 그 와중에 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늘어난 것이니 결과물을 제공받은 이도 더 나은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늘어난다. 즉, 단순히 혜택일지 제약일지, 적용 대상이 나인지 상대인지 정도의 차이일 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듯한 선택지다. 하지만 실상 하나는 그것을 사용하는 나와 상대, 그리고 결과를 받는 제3자까지 모두 이롭게 만드는 반면 다른 하나는 셋 모두를 해롭게 한다. 나는 이 업을 사랑하고 내가 하는 작업에 자부심도 있지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상대의 작업을 훼방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상대는 방해를 입어 예상보다 덜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으며, 그것을 경험으로 받는 이도 보다 좋은 결과물을 얻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처럼 살다보면 종종 이런 선택지와 마주하게 된다. 마치 동전을 뒤집듯 단지 반대 방향일 뿐인데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 되어버리는 그런 선택의 결과들이. 나와 차곡차곡 같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저만치 가있는 누군가를 볼 때처럼, 깊은 고민 없이 택한 결과는 나와 모두를 이롭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롭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일 때 그렇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 규칙을 만든 이가 이런 점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예능이니 재밌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저 규칙 자체는 좋게 생각되지 않지만, 사용하는 것조차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규칙을 선택하는 이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허가된 모든 규칙을 사용한다는 점, 낯선 환경을 겪는 신입의 불리함을 보완해주는 점 등을 따져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세 명 모두가 합의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행사의 최종 대상은 시청자고, 요리하는 이들도 먹는 이도 모두 대본 없이 규칙만 숙지한 채 각자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이 무대 안에서는 어떤 규칙을 선택하든 옳지 않다고 할 수 없다.





25.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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