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것 ㅋㅋ 데려와 봐 [10매]
대한민국 전체 근로자의 75%는 드라마 공인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인 350만원’조차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쥐꼬리보다 아주 약간이라도 더 받는 근로자는 25퍼센트뿐입니다. 고작 네 명 중 한 명이지요. 그러니 드라마에 따르면, 나머지 75퍼센트는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언제든지 월급이 쥐꼬리만도 못하다며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연인이든 배우자든 세후 월급이 350이 안 된다면, 세전 월급이 410보다 적다면, 그깟 푼돈 벌어놓고 지금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 가냐고 마음 놓고 나무라셔도 됩니다. 드라마가 공증해줬으니 괜찮습니다. 이런 고명한 의식을 품은 훌륭한 각본이 내부 회의에서도, 방송 심의에서도, 제작 현장에서도, 이후 편집 단계에서마저도 통과가 되고 방영이 되는 한국에서는 충분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지요, 오히려 그래야 합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통과 평균의 정의는 사전이 아닌 드라마와 SNS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시민 공통의 개념과 상식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합의하여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나이, 특정 직업군, 특정 사상을 공유하는 몇몇만이 지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등만 의미 있고, 극소수만 인정해줄 만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인생의 패배자, 비교 당해야 하는 대상, 자신의 모자람과 노력의 부족함을 반성해야 하는 못난이로 여기셔도 됩니다. 한국 드라마가 아침 저녁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그것을 꾸준히 인증해주니까요. 태반이 모지리뿐인 사회에서 계속 타인보다 부족하다는 불만족과 나만 얻지 못한다는 억울함을 쌓아가도 된다고 SNS가 30초마다 장려해주니까요.
모름지기 관념과 생각을 개념과 이야기로 만드는 작가라 함은 고현학적인 시선으로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회를 대변하는 직업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즐길 수 있게 다듬어주고,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는 크게 소리 내지 못하는 것에 대신 소리쳐 분노하는 생물입니다. 사람들이 아직 주목하지 못한 것을 앞서 조명해주며, 이해와 인과에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미처 헷갈려 하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와 해석을 드러내는 일로 사람들이 각자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존재입니다. 마치 어제 깜깜한 하늘에서 두런두런 빛나던 414개의 명명한 등불들처럼요.
허나 글쓴이가 쥐고 있는 펜으로 할 수 있는 더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욕망과 정서에 불을 지르는 일이지요.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창작자이자 빛나는 예술가이자 현오한 글쓴이의 진정한 역할입니다. 고양이 따위에게 방울을 다는 일 정도는 우습게 여길 만큼 우리가 쥐라고 부르던 것의 크기를 한없이 키우는 일. 그 꼬리조차 잡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일. 아직 달리고 있는 이를 트랙 밖으로 쫓아내고, 결과도 보지 않은 이를 이미 패배자라고 규정하여 그 둘을 싸움 붙이는 일. 인간이 최대로 얻을 수 있는 열 가지 중에 최소한 여덟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정상 취급을 해주는 일. 이러는 동안에 '히히 그래도 나는 다행히 25%다'라는 생각을 '맞아. 너만큼은 정상이잖아. 아니야?'라고 부추기는 일. 이런 일이야 말로 세상과 사회에 공헌하는 글쓴이의 자세일 것입니다. 나 역시 이런 찬란한 각본을 쓸 수 있었으면 참 뿌듯했을 텐데, 재능과 노력이 부족해 활자 공해로 데이터나 낭비하는 글쟁이밖에 못 되는군요. 그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혹시나 싶어 첨언하자면, 나는 지금 한쪽으로 멈춤 없이 쏠려가는 현 세태에 대한 걱정과 경계, 왜곡된 인식과 문화를 조장하는 간접적 세뇌, 선별적인 인상과 언어로 착각을 정석이라 믿도록 시류를 미필적으로 오도하는 것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은 단지 쥐가 얼마나 거대한지 몽매하여 알지도 못하면서, 그 꼬리조차 벌지 못한 탓에 그저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씩씩대는, 그 75%에 속한 어느 비정상의 옹졸한 넋두리일 뿐입니다. 울지 말고 천천히 말하라고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문득 예전에 썼던 <티와이에프와이에스>라는 글이 떠오르는군요. <비서 오인치>라는 글도요. '350만원짜리 쥐꼬리'는 ‘MSGR'과 ’느좋‘ 이후 오랜만에 신선하고 참신한 깨달음이었습니다.
2025.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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