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서울
도시 등산은 산이 아니라 옛적 산이었을 자리를 오르는 도시의 등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산에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신 집이나 건물이 들어서 있고 흙이어야 할 길에는 아스팔트나 계단으로 깔끔히 포장이 되어 있지요. 다만 등산과 같은 것이라고는 오르막 길이라는 경사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올라간다는 의미의 등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산은 나무와 바위와 흙 대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거대 바위산입니다. 그래도 산과 공통점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오르면 올라갈수록에 멋진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치 또한 산과 산이 이어진 대자연의 황홀경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빌딩들을 내려다보는 대도시의 인위적 마천루입니다.
도시 등반은 장점도 있습니다. 등산을 위하여 등산복과 등산화를 마치 산악회라도 된 듯이 거의 비슷한 무늬로 갖춰 입고 낮은 둔덕이라도 마치 에베레스트, K2, 고지를 점령하듯 비장한 각오로 오르는 것과 달리, 그냥 일상복의 차림에서 운동화, 심지어 구두를 신고도 이것이 아무도 등산이라고 눈치채지 않도록 발걸음을 뗀다는데 묘미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산에 원래 살고 있는 주민이어서 등산이 아니라 꼭대기에 위치한 집을 향해 그저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등산에 비해 지나치는 이들은 아주 많으며 서로가 등산을 하고 있는지 이 멋진 산 등성이에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도시 등산 과정에는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것도 이점입니다. 산에서는 카페를 만나기 어렵지만 도시의 산 꼭대기라도 처음 보는 작고 앙증맞은 카페들이 산 곳곳에 위치해 있지요. 산에서 먹는 커피의 맛은 도시 등산에서도 운치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산 정상 부근에 편의점도 있고 서점이 있거나 시장도 있을 때도 있어 놀라곤 하지요. 도시는 넓은 들을 놔두고 원래 산이었을 이 언덕에 어떻게 이렇게 길을 내고 계단을 만들고 이렇게 촘촘히 집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인간의 바벨탑적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도시 등산을 하다 보면 꽤 멋진 집도 종종 만나곤 합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내려다보는 산의 자연 풍광을 그대로 욕심내려 하는 듯한 이러한 집들은 마치 깊은 산중 절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침범할 수 없는 비공개의 절이라, 그 안에는 주지 스님의 호화로운 세속적 컬렉션이 펼쳐 저 있을 것이라 상상을 할 뿐이지요. 그러나 도시인이라면 다만 도시 등산을 시도하고 있을 뿐, 이 산에 아예 살 생각은 좋은 의견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길이 잘 닦인 콘크리트, 아스팔트 산이라 해도 산세가 꽤 험하고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도시인은 가끔 도시 등산을 할 뿐 사람과 인정이 과하게 넘쳐나 빵빵거리는 소리가 난무하는 도심의 한복판에서 각종 미세먼지를 호흡해야 진정이지요.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평소에 전혀 쓰지 않은 다리의 근육이 활성화되어 조금 힘든 순간이 있지만 산의 정상에 올랐음에도 전혀 숨은 차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 한 모금, 목을 축이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지요. 도시 등산은 해가 져도 빨리 하산해야 할 걱정이 없습니다. 가로등이 나무만큼 빽빽하게 산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석양의 아름다움을 잠시 감상하고 내려가도 전혀 시간문제가 되지 않지요.
도시 등산이 익숙한 이유는 한때 도시의 깊숙하고 빽빽한 산 자락에 한때 살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학교도 도시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매일 도시 등산을 밥 먹듯이 하였지요. 그래서 산이 지겨운 도시인은 산 아래로 내려와 살기 원했습니다. 산보다는 바다 같은 강이 보이는 여름에는 타오를 듯이 햇살이 더 뜨겁고 겨울에는 얼어붙을 듯 강바람이 더 차가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를 불렀었지요. 그러나 산에 사는 것보다 강에 사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도시 등산을 하며 저 멀리 강을 노려 보는 것이지요. 도시 등산은 산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뻐근하고 시원한 다리와, 맑게 트인 시원한 눈, 이 드넓은 자연 또는 도시 속에 어디에 살지 같은 걱정도 별거 아니라는 호도지기, 또는 호연지기를 느끼게 해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