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사태급 전율이었다. 이제 와서 몇 시간 만의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핵발사의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의 예고였고, 순간적으로는 미얀마 쿠데타 군부통치에 버금가는 사회를 가정했다. 기록을 남기고 글을 쓰며 혹시 이것으로 인하여 잡혀갈 수도 있는 상황을 상상했다. 마트에 물과 라면을 사러 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고, 경제적으로는 파산으로 벼락 거지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어떤 흉악한 빌런 때문에.
이와 같이 직권남용의 문제는 비단 국가 권력에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에서나 발생한다. 인사 평가 권한의 취지는 신상필벌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성과와 거의 상관없이 개인의 맘에 드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보복의 수단으로 쉽게 활용된다. 그리고 그 권한이 부여되는 승진이라는 제도는 권력에 쉽게 무릎 꿇게 제도화 함으로써 충성 경쟁을 유발하고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이는 성과주의와 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성과에는 마이너스가 되는 비효율 조직으로 전환시켜 버린다.
그 상명하복의 피라미드 구조를 유지, 감시하는 것이 인사(HR) 조직이다. 없으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동기부여에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지만 실은 피라미드 정점의 명령에 더 쉬운 절대복종의 이념을 제공할 뿐이다. 그 원칙이 바로 신상필벌, 맘에 들지 않아서 이유 없이 벌을 내릴 수 있는 공식적 직권남용 권한이다. 그것을 합리적인 직권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이 인사관리의 핵심 능력이다. 다만 국가와 달리 군대를 동원할 수 없는 것이 차이라고 할까.
그러나 직권남용의 범위와 판단은 명확치 않다. 인간의 불완전한 사적 욕망으로 인하여 대부분은 직권이 주어지면 남용을 하게 되어 있으며 권력은 이미 오버되어 사용된다.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한계는 눈치보기 정도였는데 근래에는 명확한 법과 규정이 없는 경우 그러하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최대주주라는 직권의 가족은 처음부터 임원이라거나 초고속 승진을 하는 게 당연한 셈이었는데 주주이익에 반하는 행위다. 그러나 인사는 이를 제도화하고 주입한다. 이제 그것이 국가에도 적용된다. 트럼프만 보아도 사돈을 대사에 앉히고 딸과 사위, 아들에게도 고위직을 나누어 준다. 친하게 지내고 반대의견을 내지 않을 예스맨들에게만 자리에 앉힌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죄를 지어도 사면권을 쥐고고 가족과 측근에게만 면죄부를 남발한다.
따라서 직권남용을 보다 엄밀하게 규정하고 직권의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측근에게 선심 쓰듯 나누어 주는 정무직의 자리는 심각하게 축소되어야 하며, 더더욱이 가족과 친인척의 임명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사면권도 교황의 면죄부 보다 더욱 부패한 오늘날에는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거부권도 마찬가지로 취지와는 달리 기분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변질된 것으로 보아 직권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더 나아가서는 직권남용은 그 부당함이 과할 경우 적극적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 인사와 평가권을 객관적 지표에서 벋어나 보복성 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던지 교황이 면죄부를 주듯 사면권의 남용도 마찬가지다. 직무를 매매하고 단지 친하다는 이유 만으로 나누어 주는 행위도 범위를 강화해 역시 처벌해야 한다. 특히 기분에 따라 맘에 들지 않는다고 죽이려고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누고 핵을 터뜨리는 것에 버금가는 자국민 자해행위는 국가의 전복을 획책한 심각한 직권남용과 반란행위의 최정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신상필벌, 특히 필벌은 그 직권자에게 직권의 남용 시 더욱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직권을 남용한 해악이 크고 중하며 국민에게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끼침이 심각하고 회복의 기대도 요원한 바,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2024년 12월 4일 국민의 직권으로 파면하고 사형에 처할 것을 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