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Dec 10. 2024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이유

feat 중도와 중용

당신이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그 손을 주로 쓰는 이유는 확하지 않다. 오랫동안 오른손 또는 왼손을 주로 쓰는 유전자의 발현일 수도 있고, 태어나 보니 이미 세상은 오른손에 이미 맞추어져 있어서 오른손을 주로 쓰도록, 그리고 예외적으로 왼손을 쓰도록 훈련받은 결과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른손을 쓰는 데는 반대로 좌뇌가 담당하는데, 언어와 사고를 주로 담당하는 우뇌의 기능이 커지면서 오른손잡이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주장도 과학적이거나 그리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왜 어머니의 아버지의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오른손을 주로 써서 그것이 유전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고, 그런 오른손잡이 사람들이 모여 선거에서 이긴 후 왼손잡이를 배척하고 오른손잡이용 물건을 만들게 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반대로 머리는 말 잘하는 좌뇌가 정권을 잡았다는 설은 왜 머리와 몸을 반대로 꼬아 놓았는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신의 개입을 가정할 경우, 신은 항상 변혁을 꾀하는 급진 좌파였으나 그 신통을 따르는 추종자는 이미 얻은 이권의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극진 우파에 가깝다는 것만이 좌뇌가 우몸을 지배하는 결과처럼 들린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은 우파와 좌파로 나뉜다. 그런데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싸우지 않는 것에 비해 우파와 좌파는 엄청나게 싸우고 있는 듯하다. 웃기는 것은  스스로 우파, 좌파를 참칭하기보다는 상대를 우파, 좌파로 제멋대로 규정하여 비난하며 오른손잡이가 나쁜가 왼손잡이가 나쁜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 면만 있고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 파괴적 행위인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은 협력할 뿐 다투지 않는다. 오른손잡이임에도 왼손을 꺾지 않고 왼손잡이라도 오른손이 언감생심 주도권을 탐낼까 봐 오른손을 자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손을 쓰는 것은 한쪽 손을 쓰는 것에 비하여 엄청난 효과가 있다. 왼손은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은 자판을 눌러야 글을 쓰는데 최상의 호흡을 발휘한다. 스포츠에서는 대부분 오른손을 쓰는 것을 감안하여 왼손 투수, 왼손 타자, 왼발 스트라이커가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들은 대부분 보완과 협조 관계이다.


오른손잡이가 많고 왼손잡이가 적은 것처럼 세상은 좌파보다는 우파가 아진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 결과일 수도 있고, 인류와 사회가 몇 번의 변혁기를 거쳐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다. 또는 좌뇌를 통해 우몸을 지배했던 신으로부터 벗어나, 과학기술이라는 우뇌를 통해 좌몸을 지배하는 진화의 발로일 수도 있다. 좌우로 나뉜다는 지금의 정당은 사실상 모두 우파에 가까운 정당이다. 다만 그 우와 좌의 기준선을 어디로 옮겨 놓느냐에 따라 더더 오른손잡이냐 더 오른손잡이냐를 놓고 다투는 것일 뿐, 그것을 진정한 왼손잡이의 사회라고는 아무래도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개별 사한을 놓고 볼 때는 의견과 행동이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어느 한쪽으로 속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왼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으로 자판을 치듯, 각 손에는 선호와 역할이 있다. 우파적 정책이 맘에 들 때도,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는 것처럼, 좌파의 정책도 한편으로는 옳고 다른 편으로는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세금을 더 내라 하면 싫어하며 그러면서도 복지는 바란다. 어느 한쪽만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며 어느 한쪽손만 혹사시켜 쓰지 않는다.


그러나 한쪽 손만을 선택하기에 강요당하기를 원하는 프레임에 빠지다 보면 오른손은 왼손을 배척하고 왼손은 오른손을 배척하게 된다. 오직 오른손, 왼손 한쪽 손만을 쓸 것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한 팔 모임에 끼워주지 않는다. 오른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모임과, 왼쪽눈으로만 바라보는 모임은 사실 둘 다 양쪽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쪽 눈을 뽑아서 모임에 충성하고 진심임을 보이도록 강요하는 프레임은 무척 위험한 애꾸들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가운데에 서는 것을 중도라도 하지만 그 가운데 설 생각은 없다. 사안에 따라 오른손으로 할 일은 오른손으로, 왼손이 더 편하면 왼손으로 할 것이다. 그러면 한쪽으로부터 왔다 갔다 다고 상대편도 아닌 우리 편도 아니라고 비난받기 좋겠지만, 두 쪽에서 비난받기 싫어 가운데에만 서있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이것을 중도가 아닌 중용이라고 부르고 싶다. 중용의 동양학적 뜻이 방대함으로 그 뜻에 딱 부합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중용은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중심을 잃었을 때 오히려 왼쪽으로 서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행동이며, 오른손이 힘이 빠져 지치면 왼손이 힘을 내 그 이상으로 돕게 하여  역할을 완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쩌다 오른손이 왼손을 자르려 하고 왼손이 오른손을 상처 내고 양손을 사용하여 마주 들지 않은 세상이 되었을까? 바보 같이 오른손만 사용하고 왼손은 사용하지 않으며, 왼발로만 걷고 오른발은 끌고 가려하는가? 스스로 또는 강요되고 세뇌된 그 프레임에 빠져 우뇌 또는 좌뇌가 생각만 하거나, 행동만 하겠다고 몸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상황은 얼마나 한심한가? 음양 조화의 이치를 깨고, 오른손 왼손, 남과 여는 왜 마주해도 아까운 시간에 다투고만 있을까? 낮이 밤을 없애려 하고 밤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합당할까? 


오른손잡이 타자이 왼손잡이 투수이든 안타를 치고 홈런을 막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손을 쓰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감독은 더더욱 그러하며 그 대신 선수는 상대팀의 라안업에 따라 적당히 우완, 좌완, 우타, 좌타를 배치해야 한다. 그것을 반반씩 딱 중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균형 있게, 그것을 중용이라 부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