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신의 투표
신의 투표
신은 선거에 관심이 있을까? 사실 투표에 의하여 선출되지 않은 신은 선거에 관하여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투표권이 없어서 그런지 신은 인간의 잔치에 무관심하면서도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듯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신이 먼저 "선거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 "사전투표는 했는지?" 이야기를 먼저 꺼내 들었다. 아마도 신은 일부러 인간사에 무관심한 한량이 아니라, 최신 트렌드를 꽤고 있는 셀럽인척 어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의 투표권이 부럽다고 해서 신이 인간과 같이 동등한 1표를 행사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신이 아끼는 후보에게 1천만 표를 선물해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더욱 안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선거에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음에 분명했다. 누가 당선되면 절대 안 되고, '혹시 신을 좋아하는 자가 당선되기를 바라기라도 해서?' 네버, 절대 아니다. 신은 인간 따위 누가 당선 되고 안되고는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이 선거를 이용하여 신의 이름을 파는, 즉 신의 브랜드를 무단 도용하여 싸구려로 파는 자들 때문에 상당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신은 선거에 대해 인사치레로 묻는 것 같았지만 선거 때마다 더욱 파렴치하게 마치 신이 누구를 지지하는 듯이 말하고 다니는 것에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듯했다. 신은 신의 신성한 브랜드가 허접한 '당'이나 '후보자' 따위의 이름 밑에서 장식물처럼 쓰이는 게 무엇보다도 싫었다. 게다가 이 선거 기간에 특히 신은 뒷전으로 밀려, 신의 대리인 들은 '신' 대신 '당'과 '후보자' 따위를 치켜세우는 것이 심히 못마땅했다. 신의 분노는 마치 제우스가 바람을 피웠을 때의 헤라의 질투와 견줄만했다.
신은 누구를 뽑을까?
신이 이렇게 화가 나 있으므로 오늘 일을 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신은 한편에서는 화도 내고 한편에서는 일도 완벽하게 하는 그런 눈물도 피도 없는 냉혹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신의 성격을 모독하는 것이다. 일찍이 신의 성격을 MBTI를 통해서 분석해 보는 것이 이 컨설팅의 출발점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신은 매우 다혈질적인 면모를 알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신이 인간의 선거에 난입하지 않듯이, 선거를 빌미로 신의 브랜드를 좌판에서 싸구려로 헐값에 세일하는 자들을 당장 목매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는 듯 다른 일에 매진할 그런 신도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신의 깊은 뜻을 알아볼 겸 돌직구를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신이라면 누구를 뽑으시겠습니까?"라고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이러한 질문을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도 민감한 시기여서 니편내편을 가르고 낙인을 찍겠지만, 이러한 질문을 신에게 던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수도 있기에 신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어디에도 없을 신의 의사를 표시할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화가 나지 않은 모습으로, 아주 침착하고 미소까지 지으며, 마치 그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반응에 오히려 놀란 것은 신이 아니라 내쪽이었다. 그러면서 신은 그렇다고 천박하게 몇찍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주 쉽게 이해를 돕겠다며 신이 평소 좋아하는 드라마를 예로 들었다.
편의점 샛별이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
"편의점 샛별이로 누구를 뽑을 거냐고?" '편의점 샛별이고라고라고라?' 잘못들은 것인지 귀를 후벼 파며 의심했다. 대통령을 뽑는데 난데없이 '편의점'도 웃긴데, '샛별이'라니? 그렇지만 나도 '김유정'이 나오는 이 드라마를 봤었기에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물론 편의점에 샛별이로 나오는 '김유정'이 알바를 하고 있으면 그 편의점이 거리가 다소 멀어도 나도 그 편의점에만 가겠지만, 이건 편의점 알바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신은 대통령 선거는 편의점 알바를 뽑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네가 편의점 점주인데 일 잘하는 알바를 뽑아야 하는데 역시 편의점계의 최고 알바는 '샛별이'가 아니겠냐는 것이 신의 지론이었다. "일리가 있다..." '아놔 나 지금 신의 비유에 감탄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을 우문현답이라고 하는 것일까!
신은 매우 친절하게도 이 편의점은 지난 알바가 삥땅 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들킬 것 같자 편의점주를 담그려고 해서 다시 알바를 뽑는 상황이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서 새로운 알바 이력서를 받아보니 점주를 삥땅치고 담그려 했던 알바 친구들도 있고, 그 알바를 처음 소개했던 얘도 있고, 알바한테 쥐어 터졌던 얘도 있고, 뭐 죄다 하자 투성이지만 그중에 하나 알바를 뽑아 당장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뭐 이력서는 그렇다 치고 실제로 앞으로 편의점을 어떤 알바가 제일 잘할 것이냐는 것이냐다. 혹시 손님의 나이와 성별에 따라 갈라 치기, 조롱과 혐오를 하는 알바는 아닌지, 반대로 너무 친절하여 편의점을 자신이 몸 담았던 사이비 교주와 양아치의 쉼터로 만들 것은 아닌지, 혹시 GS25 편의점을 통째로 길 건너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싼 값에 팔아넘기려는 간자는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편의점 청소는 열심히 하는지, 물건은 제때 들여올 수 있는지, 진열을 제대로 하는지, 24시간 교대 근무는 제대로 서포트가 되는지, 그런 면에서 '샛별이' 만큼 친절하고 싹싹한 알바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편의점 알바다
'아 신은 대통령이 편의점 알바 정도로 생각되는구나!' 그렇다. 역시 신은 다르다! 편의점 알바를 뽑는데 왜 신이 굳이 누구를 지지하겠다고 하겠으며, 편의점 알바가 뭘 믿는지 안 믿는지를 따지겠는가? 편의점 알바는 편의점에 진심인 샛별이를 뽑으면 될 것이었다. 편의점에 가끔 찾아오는 양아치를 물리치고, 먼 곳에서도 기꺼이 편의점을 방문하게 만들 '샛별이'를 말이다. 어디가 그렇게 신은 '샛별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어 샛별이가 태권도 유단자인데 시원하게 날라차기를 잘하더구먼"
"OMG"
'신은 샛별이가 예쁘고 친절하고 싹싹해서 좋아한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