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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주택정보는 왜 터는 걸까?

feat 인구주택총조사

by Emile


부재중 경고장


누군가 문 가운데 커다란 경고장을 붙여놓고 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빚은 있지만 사채도 없고 연체도 없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 앞까지 찾아와 경고장까지 붙여 놓을 일은 아니었다. 방문자 이름은 '조사원'씨라고 되어 있었다. 이름을 하필이면 '사원'으로 지었을까? '사장'은 아니더라도 '부장'으로라도 지었더라면 설령 승진에서 탈락했더라도 여전히 '조사장'님이나 '조부장'님으로 불렸을 텐데, 부모님의 소박한 꿈 때문에 사장이 되어도 '조사원'사장님으로 불릴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조사원 조사원씨


다름 아니라 이 경고장은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의 방문 기록지였고, 재차 불시에 방문하여 신상을 탈탈 털어갈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체납 중인 것은 AI 시대에 걸맞게 '금전'이 아니라 바로 '정보'였다. 그리고 방문한 조사원 성명란에 놀랍게도 똑 같이 '조사원'이란 이름으로 써 놓았는데, 나는 그것이 이 조사원의 진짜 이름일거라고 굳게 믿었다. 설마 이런 중요한 국가의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이 가라(가짜)로 이름을 쓸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압수수색 영장


'조사원' 검사로부터 압수 수색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온라인을 통하여 자백을 하는 것뿐이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급하게 검색을 해서 '인구주택총조사'를 마치기로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주말에 영장도 없이 개인 정보를 내놓으라고 '조사원'씨를 비롯한 정보 기동대들이 집 주위를 뱅뱅 둘러싸고 사이렌 소리 같은 초인종을 커다랗게 여러 번 울릴 수 있다. 그러면 이웃들은 결국 여기 이 집에 연예인, 또는 인플루언서, 어쩌면 작가, 하여튼 뭐라고 부르든 간에 희한한 글을 쓰는 아주 무명한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싸인을 해 달라고 줄을 서거나, 기자들과 방송국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룰 수 있었다. 이런 민폐라니,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결혼정보회사 등급


실제 해 보니 '인구주택총조사'라고 해서 색다른 중요한 것을 묻는가 했더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실명과 전화번호 등 신상을 알뜰하게 털어서 혹시 모를 유출에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 같았고, 결혼정보회사도 아닌데 집과, 재산, 수입, 직업, 학력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 같았다. 이런 정보라면 초혼뿐 아니라 재혼도 연결해 줄 가능성을 열어둔 것 같았다.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아주 조금 올려치기를 했다. '조사원'씨에게 직접 심문을 받았다면 금방 들통날 일이었겠지만 다행히... 그런데 이 조사는 주택, 일자리, 복지 등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쓰인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어느 하나 지금껏 도움을 받은 기억은 없는 것 같고, 혹시 모를 전쟁이나 자연재해에 따른 지구 멸망에 대비해 한정된 배나 우주선에 태우거나 그렇지 않을 비밀 등급을 미리 부여하기 위한 작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목덜미를 물었다.


넌 나 말고 내 재산에만 관심이 있지?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끝이 났다. '엥 이게 끝이라고?' 인구주택총조사는 팔기에 돈이 되는 나의 신상과, 등급을 매기기 위한 재산, 소득, 집, 직업, 학력에만 관심이 있지 내가 책을 몇 권을 읽었거나 글을 몇 편을 썼거나, 좋아요를 얼마나 받았는지 같은 정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별)다방 커피를 마셨는지 믹스커피를 매일 마시는지에 대한 질문도 없고, 빵값이 너무 비싸서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우리 고유의 인사도 없다. 요즘 좋아하는 아이돌은 물론이고 어르신을 위한 트로트에 대한 질문도 없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미술관에 대하여도 몇 번이나 가봤냐고 묻지도 않고, 영화나 넷플릭스, 유튜브 중 무엇을 보는지 관심도 없다. 재산만 노리는 너 실망이다.


추첨 말고 당첨


이런 식이어서는 아마도 '인구주택총조사'에 대하여 글을 쓰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통계청, 곧 국가데이터 뭐시기로 바뀐다는 '조사원' 청장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 조사에 참여하면 겨우 추첨을 통해 준다는 기념주화(5만원화)와 모바일상품권(3만원 상당)을 그냥 모두 지급하라! 정식으로 광고비를 지급하던지... 그리고 이제 집에 압수수색을 예고하는 무서운 경고장 같은 것은 그만 붙이고 AI와 데이터에 걸맞은 새로운 조사 방법과 신선한 문항을 좀 연구하기 바란다. 결혼정보회사 등급에나 쓰일 법한 그런 호구조사는 좀 그만하고, 아 이미 유출돼서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지 않나 아마?


100년전 질문 말고 100년 후 질문


'센서스 100년'이라고 자랑하는 것 같은데 100년을 내다보진 못해도 내가 보기에 100년 전 질문 같은 것은 좀 지양했으면 한다. 뭐? 100년 후 우주선에 태울 등급을 선별하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그러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100년 후에는 어차피 살아있을지도 않을 텐데 뭐. 그 대신 조사원 씨. 이 글을 '인구주택총조사'에 부록으로 동봉해 주길 바라요. 누가 썼는지 비밀은 꼭 지켜주고, 1등급으로, 우주선은 필요 없고, 커플매칭 등급으로, 알아요 알아요 통계작성 목적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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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