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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꾸미 게임

feat 수능

by Emile
참을 수 없는 수능의 기괴함


수능일의 풍경은 솔직히 말하면 좀 기괴하다. 수능 때문에 금융시장이 한 시간 늦게 열리는 것이 그렇고, 한 번도 실제로 늦게 출근해 본 경험은 없어지만, 공무원을 비롯하여 한 시간 늦게 출근하라는 조치도 그렇다. 수능을 잘 보라고 구청장이 커다란 현수막을 내 건 것도 이상했다. '언제부터 구청장이 고딩에 관심이 있었다고?' 그보다는 옆에 구청장 이름이 더 크게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수능 응원을 빙자한 사전 선거운동이 의심된다. 수능을 잘 보게 해달라고 절과 교회에서는 기도회가 열리는 것은 더 오싹하다. 수능이 언제부터 신들의 능력 시험터가 되었을까? 그러나 시험에서는 신빨보다 엿빨이다. 신은 시험하지 시험을 치는 데는 영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신은 거의 수포 무학력자라고 봐야 한다.


쭈꾸미 게임


안타깝게도 무두다 수능을 잘 보라고 응원하지만 이것은 그럴 수 없는 게임이다. "얼음! 여러분,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이것은 오징어 게임처럼 떨어져도 바로 죽지는 않지만 적어도 잘 보는 자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자도 있는, 쭈꾸미 게임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점수에 따라붙고 떨어지는 원리는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뺏고 빼앗기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제로섬 게임


제로섬 게임은 모든 참가자들의 이득과 손실을 모두 합하면 그 합이 항상 0이 되는 게임을 말한다. 즉, 한쪽이 얻는 이익만큼 반드시 다른 쪽이 손실을 보게 되어 총합이 0이 되는 것이다. 이는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지는 스포츠 경기 같은 경쟁 게임들이 제로섬 게임에 해당한다. 이 게임의 특징은 치열한 경쟁을 기반으로 하며, 그래서 협력보다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양상이다. 제로섬 게임은 약육강식, 약탈경제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먹이 사냥을 하는 동물의 세계나, 트럼프의 무역관세 같은 것이다. 물론 '수능'도 안타깝게도 제로섬 게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죽이지 않으면 죽는, 그러나 생존하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오징어 게임의 아류인 쭈꾸미 게임인 셈이다. 이제 절과 교회에 가서 수능을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를 알겠다. 즉 극락이나 천국보다는 우선 살고 봐야 하는 것이 수능의 현실이다.


제곱근 게임


그러나 인간은 약육강식 제로섬에서 벋어나 협력을 통하면 더 많은 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의 유일한 존재이다. 이것을 제곱근 게임(Square Game)의 법칙이라고 한다. 어디서 검색하고 없다고 의아해하지 마라. 방금 생각해 낸 것이니까. 이를테면 악착 같이 메시지 전송 요금을 받는 것보다, 무료 카톡 서비스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나, 은행들의 무료 송금 서비스, 유튜브의 무료 구독 서비스가 대표적인 제곱근 게임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협력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저온 것은 아니다. 더 많은 필요를 끌어들이기 위한 '무늬만 협력'으로 시작하여 더 많은 광고를 끌어들이거나, 작가라고 치켜세우다가 멤버십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이 마저도 단 순히 죽고 죽이는 것보다 더 많은 진전을 이룬 것이기에 이교도를 말살시키려는 종교적 오징어 게임보다는 훨씬 더 진화한 것이다.


수능은 지옥인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라는 사람이 한국 생활을 "지옥 같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부 기간은 너무 고통스러웠고, 지옥에 있는 것 같아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라고 밝혔는데 "한국은 좁고 인구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해서, 모두가 앞서려다 서로를 해치기도 한다"며 한국은 그립지 않으며, 공연이 있을 때만 돌아간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이 '경쟁'에 있지 않았냐고 비판도 많았지만, 그가 연주하는 소리는 것은 과연 '천국'처럼 아름다울지 아니면 '지옥'의 장송곡일지 의문이 들었다.


수능은 특별하지 않아야


돌이켜 보면 '수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쭈꾸미 게임'으로 장차 닥칠 '오징어 게임'의 맛보기 단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능은 앞으로는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아니라 제곱근 게임(Square Game)이 되어야 할 터이다. 수능의 점수가 학창 시절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학교를 다녔다는 추억이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수능은 단지 그 통과 의례 일뿐 사실 아무 가능성도 제약 해선 안되며 모든 것이어서도 안된다. 그래서 금융시장도, 관공서도 멈추면 안 되고 현수막도 필요 없는 것이다. 수능은 그냥 시험이어야지 특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학교는 죽고 살고를 가르는 수능보다 협력이라는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나마 공정한 게임


그러나 살다 보면 '수능' 만큼 공정한 시절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마주하게 될 현실은 불공정 '오징어 꼴뚜기 게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처럼 남녀, 노소, 빈부, 미추의 차이 없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인간은 협력이라는 제곱근 게임을 응용하여 죽이지도 않고 차지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미 수능에 앞서서도 부모를 이용하여 논문의 공저자와 같은 반칙이 등장하고, 수능 이외의 각종 스펙 쌓기를 통해 이미 고지를 차지한다. 그 뒤에는 협력이란 명목의 청탁과 뒷거래가 성행한다. 수능도 사교육의 위험을 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 만한 공정한 시험은 앞으로의 생에 찾아보기 함들 것이라 생각한다.


난 이게임을 해 봤어요


이 게임을 왈가왈부하는 까닭은 이 게임을 이미 해 보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험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영희의 눈을 피해 1단계 오징어 게임의 건너편에 도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누가 제일 먼저, 마지막으로 도달했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같은 팀, 같은 편이라고 해도 언제든 찢어져서 다른 팀, 다른 편이 되어 짝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러므로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잘 먹고 푹 자고 앞으로 다가올 게임을 맞이하면 된다. 그리고 나면 수능이 왜 제일 쉬운 게임인지를, 그래서 아무것도 수능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올해도 이름만 바뀌었지 쭈꾸미 게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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