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사탄탱고
크-러-스-너-로-르-커-이
"크-러-스-너-로-르-커-이" 그가 올해(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했을 때 사실 그의 이름을 가지고 놀린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일 뿐만 아니라 "크-러-스-너-로-르-커-이" 라고 발음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름은 좀 호기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했지요. 더군다나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는 마치 '악마와의 춤을' 같은 느낌이 연상되어 황홀경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적어도 책의 뚜껑을 처음 볼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표지가 온통 빨간색으로 매혹적이었거든요. 거기에는 제목과 그의 어려운 이름 "크-러-스-너-로-르-커-이"가 마치 고대 사탄의 인장처럼 찍혀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놀린 것을 사과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책을 읽어 보기로 합니다. 그는 과연 놀림을 받지 않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사탄의 글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노벨문학상의 힘?
그의 문체는 극도로 긴 문장과 단락 없는 서술로 유명해서 '종말의 문장'으로 불린다고 겁을 주길래 읽기 전 좀 걱정하였지만 전혀 두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혹 문장이 너무 길고 난해하여 읽다가 숨이 턱 막힐 듯 사탄이 목을 조르는 모습을 상상했었지만 그런 사탄은 없었지요. 확실히 단락이 좀 길긴 하지만, 그래서 한번 읽으면 꽤 오래 읽고 있어야 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숨이 차분해져 술술 넘어갑니다. "크러스너로르커이"도 몇 번을 발음하고 나니 이제 그와 친구인 것처럼 이름이 입에 착착 달라붙고요. 그러나 그의 책이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책의 계절이 추운 겨울이었고, 그것도 읽는 내내 책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별로 상쾌해지는 날씨는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과연 '노벨문학상'의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고 있는 길이 춥고 비가 쏟아지는 진창길이라 해도 견디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것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이유에 기대어 책을 중간에 덥지 않고 끝까지 가보려는 힘이지요. 기대했던 사탄이 빨간 망토를 두르거나 입에 빨간 장미를 물고 유쾌하게 탱고를 추는 악마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절망의 상징일지라도 그 정체를 마지막까지 보고야 마는 인내의 이유랄까요?
술 취한 막춤의 끝
탱고를 추는 장면이 한번 나오긴 합니다. 그것은 우아한 탱고라기보다는 술에 취한 밤 벌어지는 절망을 잊기 위한 광란의 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춤이 과연 탱고였는지, 막춤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춤사위는 그냥 술에 취해 흔들리고 넘어지고 다음날 기억나지 않는 숙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술에 취해 쓰러져서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을 때 종말의 심판은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렇게 취한 것이 일 년 중 단 하루였다 해도 꼭 그날에 사건은 벌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이 춤은 취중 무의식을 발동하게 하는 사탄의 장난이라고나 할까요?
카프카적 무기력
작가는 '프란치 카프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문체를 흔히 '카프카적'이라고 표현하지요. 그런데 '카프카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조리하고 암울하며,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위협, 숨 막히는 관료제와 권력의 압박, 그리고 인간의 무기력함과 소외의 모습이라고 하지요.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정말 '카프카적'이 맞습니다. 도저히 그치지 않을 것 같은 겨울비가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지 못하게 할 듯 끊임없이 내리는 가운데 사건이 벌어지지요. 어디에도 '비' 대신, 차라리 '눈'이라는 희망이라든지, '봄'이 다시 올 것 같은 생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결국 '희망 없음'을 깨닫게 되는 묵시록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그의 문장은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이 없으면 끝까지 읽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망의 춤사위
읽고 나니 이 이야기의 내용은 80년대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어 가던 헝가리의 한 외딴 시골 마을, 해체된 집단농장을 배경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때 헝가리는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가난과 불신, 무기력한 삶 속에 갇혀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번역자의 이런 설명을 듣기 전까지 어디에도 이러한 배경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욱더 답답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지요. 어디에서라도 한 줄기 '희망'의 반전이 있을 것 같은데 끝까지 한 톨의 희망도 남겨 놓지 않은 것은 바로 사탄의 술책입니다. 술을 먹고 추었던 탱고는 그나마 사탄이 허락했던 '마지막 남은 욕망의 춤사위'라고나 할까요?
종말의 시대
글쎄요 요즘 우리 사회는 "크러스너로르커이"가 말한 일종의 종말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리에는 사탄 같은 이들이 자주 등장하고 때로는 때로도 그렇고, 하마터면 거의 그럴 뻔도 했었습니다. 한동안 지난날은 그렇게 흘러갔지요. 그러나 이 땅은 '카프카적'이기보다는 보다 더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최악의 절망의 사회가 될 뻔한 작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긴 겨울의 으스스한 비를 스스로 거둬내고 다시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보란 듯이 '카프카'와 "크러스너로르커이"에게 이 땅은 '카프카적' 절망의 '비' 대신 '눈'이 내리는 나라라고 알려주지요. 추운 겨울도 녹이고 언제나 '봄'으로 되돌리는 '해'가 제일 먼저 시작되는 나라라고요. 그것이 바로 "한강" 작가가 같은 노벨문학상 작가이면서도 "크러스너로르커이"와 다르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땅에는 '사탄'이 '탱고' 따위는 발도 못 붙이게 하게 할 수많은 '한'괴 '희생'의 심지어 죽은자의 춤사위 마저 희망을 모아 지켜내고 있는 곳이라고요.
그래서 "크-러-스-너-로-르-커-이"의 작품은 '봄'의 기다림과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의 묵시록에 하얀 눈을 소복히 쌓아 묘비를 대신하며...
사탄탱고
한줄 서평 : 절망의 비 대신 눈과 봄이 있는 곳(2025.12)
내맘 $점 :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 조원규 번역 / 알마 (20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