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술에 취한 세계사
관능이냐 술이냐?
'관능'과 '술' 둘 중에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얼핏 '관능'에 더 손이 가기도 하지만 '술'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잠시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 우연히 들른 도서관, '관능'을 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입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대낮에 '술'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뒤에는 '세계사'라는 무척 '도서관'적인 안전장치가 달려있지요. 그래서 '관능'의 욕망을 포기하고 대낮에 '술'을 마시기로 합니다. 아니 읽는 것이네요.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어떤 준비된 안주도 없이 쌩으로 읽는 '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관능'을 포기한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그중에서도 '콘비비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해서 갑자기 이 술자리에 대한 기대가 올라갑니다. 어쩌면 홀짝홀짝 들이킨 이 '술'책에 벌써 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콘비비움
'콘비비움(convivium)'은 로마시대 일종의 사교파티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라틴어 함께살다(convivere)에서 유래하였는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식사 모임” 정도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임입니다. 그러나 '만찬'에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지요. 그 속에는 꼭 사회적 유대를 확인하고자 하는 사교 이상의 사악한 목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회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콘비비움'은 한편으로는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um)'이라는 단어와 대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심포지온'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시긴 하지만 '철학'적 '토론'을 수반한 뭔가 지적 '향연'이었던데 반해, '콘비비움'은 오로지 주취자의 신분과 위계, 부를 자랑을 위한 육적 '파티'였다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뭐 한편으로는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오직 먹고 마시는데 집중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싶은데요. 그러나 과연 어디 그렇게 되더란 말입니까? '회식'이 어디 깔끔하게 먹고 끝나냐고요?
양극화 파티
이렇게 콘비비움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로마 제국'의 막대한 '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당대 로마 제국은 전 세계의 부가 모이는 곳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로마'는 가장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아메리카퍼스트의 뉴욕의 월가가 떠오르지요. 이러한 '부'의 집중의 이면은 반드시 부패와 쾌락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돈'이 넘쳐나면 무엇을 하게 되냐고요? "소고기 사 먹겠지"는 옛날 개그콘서트 이야기이고, 결국 인간 셀럽의 욕망은 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파티'를 열게 되지요.
로마에는 넘칠 정도로 많은 돈이 최상층에게 흘러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의 부의 집중과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데요, 로마에도 '일론 머스크의' 1조 달러 인센티브 같은 것이 이미 성행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런 부유층이 인심까지 후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같은 이들이 매일 밤 파티를 벌이며 이 '부'를 아낌없이 과시했으니까요. 그래서 '부'의 부스러기들을 맛보려면 이런 후원자를 찾아 빌붙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영화 '기생충(Parasite)의 모티브는 이미 로마 시대에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므로 '돈'이 있는 후원자와 객식구는 공존하는 존재였습니다. '트럼프'에게 그러하듯 자신의 존재를 팔아치워 엉덩이에 키스할 준비만 되어있으면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즐길 수 있었는데 이러한 시스템의 중심에 바로 '콘비비움'이라는 연회가 존재하였던 것이지요.
초대장
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초대장이 필요했지요. 그런데 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부유층에는 매일 밤 파티를 여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고 안면이 없어도 친구의 친구 정도만 되어도 초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공중목욕탕에서 아침부터 죽치고 있다가 달라붙어 초대장을 얻어낼 수도 있었지요. 그럴듯한 외모와 아첨의 뱀의 혀만 가지고 있으면 길가가도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으니 이 당시의 셀럽들은 참으로 관대하게 까지 느껴집니다. 참석을 앞두고는 술을 진탕 먹기 위해 목욕탕에서 미리 땀을 쫙 빼두기도 했습니다. 구토도 특이한 일이 아니어서 많이 먹기 위해 참석 전 다 토하고 갔다고도 합니다. 심지어는 파티 도중 '보미트리움'이라는 구토방까지 있어 먹다 토하 다를 반복했다고는 하지만, 아마 거기까지는 사실이 아니었다지요
그러나 관대한 초대장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이 파티장은 절대 유쾌하고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초대장을 획득하긴 했지만 그 대가는 오히려 모욕과 불쾌함의 끝판왕이었지요.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 초대장을 뿌린 것이었으니까요. 콘비비움의 목적은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의 엉덩이에 칭송하며 낮은 사람을 조롱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파티의 목적은 주최자의, 주최자에 의한, 주최자를 위한, 자리배치와 노예, 포도주의 품질과 양, 음식, 술잔, 술잔을 던지는 곳을 통해 달성되는 치밀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파티의 목적
재미있는 것은 이 로마인들이 소파에 누워서 술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좌석은 누워서 술 마시기를 즐겨해서 세 명이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음식을 중심으로 삼면에 놓여있고, 노예들이 접시를 나르는 한 면만 비어있습니다. 가장 지체 낮은 사람은 노예와 가장 가까운 쪽이 자리였고, 한 테이블이지만 음식과 포도주도 가장 품질 낮은 것이 놓였습니다. 이쯤이면 대놓고 차별하는 것인데 초대의 진정한 의도는 환영도 접대도 아닌 무관심이나 공개적 망신을 위해서였음을 분명히 하였지요. 그리고 누워서 (처) 먹으니 토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네요.
갑질과 신의 물방울의 기원
노예는 서서 다니며 음식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기어 다녔습니다. 노예는 때로는 주인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손님 앞에서 매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어느 정도 지능이 높고 외모가 뛰어난 노예는 비싼 몸값을 받으며 맨 말석에 초대된 손님을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노예에게는 어느 정도 음식이나 포도주를 배분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로부터 그 쥐꼬리 만한 권력을 휘두르며 갑질을 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노예와의 사이에는 사랑과 섹스도 가능했습니다. 섹스는 때로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했고, 지능 높은 노예는 동업자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손님과 노예의 짝
초대 손님별로도 따로 노예가 존재했는데 가장 중요한 손님에게는 가장 외모가 출중한 노예가, 그리고 가장 말석의 손님에게는 가장 못생긴 노예가 짝을 이루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여태껏 우리도 하고 있는 포도의 품종과 생산된 해 같은 포도주에 대해서 아는 척하는 것이 이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술에 취해 토하기 바쁜데 포도주의 맛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그 품질이나 생산연도 마저 가짜가 많았다고 하지요.
술잔도 주최자는 특별히 제작된 황금잔에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초대 손님은 술잔에 박힌 보석의 숫자로 차별했지요. 물론 누가 이 보석을 빼 가지 않는지 노예들의 철저한 감시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말석의 초대 손님은 금이 간 술잔을 받고 모욕을 삼켜야 했습니다. 술잔의 용도는 술을 먹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던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화가 나면 술을 먹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던져 분노를 표출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
이러한 콘비비움의 참석을 놓고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그 모든 모욕을 감수할 만큼 만찬이 중요한가? 개가 먹는 빵조각을 뜯을 정도로 절박하가?"라며 한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셀럽의 파티에 참석해 어떻게 해서라도 공짜로 술과 음식을 맛보고 엉덩이에 키스하는 모욕을 감수해 가면서도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고 하는 이들은 넘쳐났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모습은 다르지 않지요.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이러한 '콘비비움'의 파티는 전혀 로마 제국의 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어떠한 모욕을 감수할 준비가 되었는데도 초대장을 남발하지 않는 셀럽들을 원망할 뿐이지요. 이미 우리는 '트럼프'의 엉덩이에 키스해 한 자리를 얻으려고 초대장을 구걸하는 세계적 현상을 보았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돼지의 엉덩이를 물고 뜯고 씹고 빨고 맛보아 다양한 공직과 기관장 등을 한 자리씩 차지한 근본 없는 인간들의 군상을 본 바 있습니다. 연예계와 같은 사교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권력과 부의 양극화와 더불어 다시 전성기를 맞을 것입니다. 권력과 부의 끝에 선 인간은 그 힘으로 어떤 선한 일을 하기보다는 그 의미 없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고 취하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요.
래미안 디에이치 자이 콘비비움
그런데 문득 이 '콘비비움'은 아파트 이름으로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의 욕망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래미안 콘비비움, 디에이치 콘비비움, 자이 콘비비움, 하이엔드 아파트 이름으로 딱입니다. 이 이름을 사용하고자 하는 아파트 단지는 저작권료 또는 아이디어료를 지급해 주세요. 싸게 해 드릴게요. 아니면 거기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결정사, 파티 이용권이라도요!
술에 취한 세계사
한줄서평 : 래미안 디에이치 자이 콘비비움 아파트 어떨까? (2025.12)
내맘 $점 : $$$+
마크 포사이스 지음 / 서정아 옮김 / 미래의 창 (29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