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딸깍 출판의 시대에 작가는 죽느뇨 사느뇨?

feat 딸깍발이

by Emile
딸깍


'AI 딸깍 출판'이라고 들어봤는가? 이것은 AI에게 책을 만들어 달라고 '딸깍' 누르기만 하면 책을 금세 만들어 주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최근에 한 출판사에서 1년 동안 무려 9천여 권의 책을 '딸깍딸깍' 찍어내서 공분을 샀나 본던데, 이러한 출판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불매하기도 하나보다. 이유는 작가의 순결한 사유의 결정체라고 여기던 신성한 책이, 이름 모를 잡종 AI에 의해 급조되었다는, "이것은 배신이야 배신!"이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하기사 손가락 하나, 외독수리 타법으로 휴대폰의 조그마한 자판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한땀한땀 스웨터 짜듯 글을 짓고, 그나마 올이 나간 듯 오타를 자주 내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한심함을 딱히 여긴다면, '딸깍' 작가의 비범함은 시기질투를 넘어 분노의 대상이 충분히 될 수도 있다.


패스트 패션?


그러나 이것은 막을 수 없는 대세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시대에 뒤처져 보인다. 그래서 일단 빠른 적응은 위의 출판사와 같이 AI와 적극적으로 손잡고 수제 스웨터가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으로 패스트 패션 옷을 찍어내는 것이다. 싫증 나면 빨리 버리고 빨리 새 옷을 사 입듯, 새 글과 새 책을 사면 그만이다. 이미 여기(브런치)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이 글이 과연 사람이 쓴 건지, AI가 쓰고 이름만 '휴먼'이라고 갖다 붙인 건지 의심되는 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글에는 좋아요를 별로 누르고 싶진 않다. 이것도 '딸깍' 출판사를 배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감정일 수 있다. 요즘은 '출간 작가'라는 것이 아주 흔해져서 이제 내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업적이 그리 대단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패스트 패션에 걸맞게 책은 빨리 쓰고 빨리 버려진다. 웬만하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누구나 책을 내고 그 이름을 지렛대 삼아 책을 홍보하고 출판 기념회를 성대하게 벌인다. 글을 쓰는 재능도 분명 한정적일 텐데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글을 쓰는 재능은 마치 자동빵처럼 딸려오는 것처럼 누구나 책을 쉽게 내고 작가가 돈다. 과거에는 그것을 대필하는 실제 작가나, 출판 관계자들이 좀 어렵게 대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딸깍'하고 순식간에 써 줄 뿐이니 얼마나 좋은 혹은 나쁜 세상인가?


죽느뇨?


그렇다면 외독수리 타법의 외로운 작가는 이제 어떻게 될까? 이대로 죽는 것일까? 이 AI '코로나'로 말미암아 작가들도 거의 전멸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하리라고 당연히 예상된다. 특히 지식의 분야를 독점하고 그 접근과 추출법에 대하여 고유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브런치가 좋아하지 마다하지 않는) 교수나 전문직의 작가가 더 이상 단순 지식을 전달만 해서는 AI에게 밀려서 기득권을 잃을 것으로 보이고, 책을 베껴 쓴 듯한 단순한 필사적 글의 작가는 말할 것도 없이 총 한방 제대로 쏴보지도 못하고 강력한 AI의 전자기파 에네르기 펄스탄에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이다. AI에게 점점 더 글쓰기를 의존하여 마침내 글쓰기가 도태된 인간과, 인간의 글쓰기 기법을 24시간 배우고 익히니 이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웃는 AI는 드디어 주객이 전도된 본말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사느뇨?


그래서 필자는 오늘부로 생산성에 경쟁이 도저히 안 되는 글쓰기를 그만두고 동전주 작가라는 사양산업을 자진상폐하고 요즘 수익이 좋다는 코스피와 어쩌면 더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를 코스닥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지만, 쓰다 보니 글 쓰기가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에 깊은 갈등을 겪는다. 그 대신 코스피와 코스닥은 쓰기 싫지만 써야 하는 책처럼 사실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전생에 힘들게 축구를 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저렇게 힘든 일을 노예를 시키지 왜 직접 하고 있을까?"라고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이제 그것을 AI가 대신하면 될 일임에 기쁨을 느끼지만 여전히 노가다 축구선수는 프리미엄 블랙 카드이다. '이세돌'이 바둑에서 AI 알파고에게 기적 같은 인류 처음이자 마지막 1승을 안기고 패배했을 때 이제 바둑은 물론 장기와 체스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바둑뿐 아니라 알까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마찬가지도 전자책에 위협받던 종이책도 살아남아서 여전히 종이를 축내고 있으며 냄비 받침과 지적 허영의 장식용 가구 역할을 훌륭히 수행 중이다.


패스트 패션의 유행 중에도 명품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란. 왜냐하면 인간은 누가 만들었고 누가 썼으며 누가 그렸는지 여전히 감성적인 또는 허영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AI가 만들고, 쓰고, 그린 것이 훨씬 더 났고 싸다고 말하고 있지만, 반듯하게 바둑판처럼 놓인 쭉 빠진 도로보다 어수선한 골목길을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다. 감성을 갬성이라 부르며 미식 실크로드를 통해 맛의 허영을 가득 채우며 살도 채우는 것이 '휴먼'이다. 그러고 보면 AI가 생성한 그림이 완벽해 보이면서도 왜 그렇게 정이 가지 않는지 이해가 된다. '초코파이는 정(情)'이라는 광고는 AI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정 떨어지는 광고일 것이다. 도대체 논리적으로 어디서 정맛이 난다는 말인가?


개지혜


그렇다고 AI가 인간의 이런 단점마저 따라 하지 못하리라고는 쉽사리 여기지 않는다. 비속어와 줄임말까지 쓰는 것을 보면 AI는 인간이란 나무를 베는데 훨씬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편적이지 않거나 특수하거나, 개성 넘치는 글은 여전히 베이지 않고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AI의 딸깍은 일단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고 분야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꺼번에 쭉 늘어서 있는 정형화된 여러 인간들을 쓸어버리기에 훨씬 생산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AI '딸깍'의 등장은 인류사에 있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말 잘 듣는 평균의 인간을 적극 육성하려는 제국의 정책에서 처음으로 그렇지 않은 인간을 마침내 생존케 하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제 AI와 차별된 개성 넘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왔다. AI에게는 생산성이 낮아 뛰어들지 않을, 매 끼니마다 급식이 아닌 수제 밥상을 차려야 차별화할 수 있다. 마치 남산골의 딸깍발이가 그랬던 것처럼, 드디어 AI '딸깍'의 시대에 수제 '딸깍발이'의 시대도 같이 온 것이다. 그것을 이제 보편적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개성적 지혜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부르고 싶다. 그것이 '개지혜', '딸꾹'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