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하룻밤과 시의맛

feat 일인칭 단수 - 돌베개에

by Emile
일인칭 단수


드디어 하루키의 두 번째-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나에게는-책을 읽기 시작한다. 일본 어느 시골에서 열차가 천천히 미끌리듯 움직이며 출발하는 기분인데, 모든 책은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이다. 이전 글에서 상실의 시대를 '야한책'으로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맙소사 이번 책의 첫 이야기부터 하룻밤(one-night)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그그그)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고-다만 영리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하룻밤 상대가 보내준 단카(일본 고유의 시가) 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를테면


당신과/나는 먼/사이였던가?

목성에서 갈아타면/됐던가?


돌베개에/귀 갖다대니/들리는 것은

흘린피의/소리 없음, 없음


이런 문구인데, 개인적으로는 저 "없음, 없음"이란 반복적인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오늘 지은 시에-따라쟁이 눈치가 좀 보이긴 하지만 사실-저 반복 문구를 바로 써먹어 본다. 읽지도 않았을 수 있지만 잘 보면 "경악, 경악"이라고 까마귀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일 단어의 반복은 시에서 잘 쓰지 않는 표현 같지만, 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는 무언가 여운이 있는 듯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고수의 무술 동작을 순간 보기만 하고, 그대로 익혀서 되돌려 주는 만화책 주인공 같은 쾌감을 느낀다.


시는 번역될 수 있는가?


그러나 단카와 시(詩)에 대한 차이점을 찾아보니 단카는 5-7-5-7-7의 5구 31음절로 이루어진 정형시라고 한다. 하지만 저 위에 예시한 단카는 그런 음절을 표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일어를 번역한 것이기에 음절보다는 내용의 해석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詩)는 과연 번역이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번역된 시집은-그 시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사실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말이었으니까. 시 자체가 난해한 마당에 번역된 시는 거의 외계어에 가깝다. 짐짓 알아먹는 척하고 이것을 읽고 있는 것은 거의 귀신의 살아있는 위선처럼 느껴진다. "과연 나만 그럴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도대체 뭐라고 번역할 때 귀신도 씨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소리가 되겠는가?


글은 음식이다


번역된 시는 일종의 국산 작물로 요리한 서양 요리를 닮았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된 시를 외국어로 번역하면 미국에서 키운 배추와 멕시코 고춧가루로 닮근 김치맛이 나는 시(詩)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거의 비슷하기는 한데 무언가 모르게 다른, 물 건너가면서 살짝 익어 버리거나, 잘 냉동했다 해도 잘 해동되지 않은, 발효가 덜 되거나 더 돼버린, 칼칼하지 않고 왠지 치즈맛이 나는 김치맛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글에는 고유의 음식맛이 난다. 그중에서도 시(詩)는 특히 번역해서 제 맛을 내기 힘든 독특한 음식맛에 냄새마저 지닌다. 다행인 것은 요리법도 입맛도 상당히 글로벌화되었다는 것이다. 잘 번역되고 표준화된 글과 시에서는 물론 엄마표 맛은 덜 나겠지만, 그래도 뛰어난 번역가 요리사들이 있기에 얼추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 지역의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글과 시를 맛보게 될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책이 외국에서 수상의 낭보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원재료의 훌륭함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레시피의 보편화를 통해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이 글에서는 일식의 맛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글보다는 간이 덜된, 생선 초밥 같은 담백하면서도 육질의 날것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싱거운 듯한 맛이다. 그래서 어떤 나라 출신 작가의 글을 좋아하냐는 것은 식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물론 자국의 음식에 익숙하기에 자국 출신 작가의 글에 우선적으로 가장 끌리겠지만, 양식을 좋아하는 개인적으로는 서양 작가의 위트가 드문드문 뿌려진 문체에 끌리는 면도 있다. 글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마찬가지 맛을 느끼는데, 다만 시(詩)는 제맛을 구현하기 아직까지도 힘든 장르인 듯싶다.


하루키의 초밥 도시락은 확실히 리본을 잔뜩 매단 맛집답게 정갈하고 둔더더기가 없었다. 특히 글에서 어떤 맛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오랜만에 먹은 이 일식 맛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너무 느끼하고 쫀득한 치즈와, 뜨겁고 매운 단짠 떡볶이에 길들여저 있다가 다른 맛을 보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하루키'만이 기억하는 이 단카(시) 들은 하룻밤의 기억 만큼이나 강렬하게 기억 속 잇(이빨) 자국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 날것의 잇자국 대신 글을 맛과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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