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상실의 시대
하루키
하루키.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익숙함에 비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상실의 시대'라고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을 삼십여 년 전 읽고 난 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 그의 명성에 비하면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책을 잘 안 읽는 프리 스타일도 아니고 '가오리'를 비롯한 몇몇 일본 작가의 책도 심심치 않게 읽었고, 최근에도 '생식기'라는 말도 안 되는 일본 신예 작가의 책을 읽고 서평까지 남긴 것에 비하면 그에 대한 태도는 확실히 야박해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재미없다거나, 일제 식민주의 망언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온갖 잡식성의 종이를 먹는 책깨비의 입맛에 볼 때 지금이라도 그의 화려한 일식집에 들러 초밥을 주문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울 일이었지만 역시 어색했다.
상실의 시대
그래서 브런치에서 이번에 '하루키 독서 챌린지'에 대해 보았을 때, "웬(when) 언제 적 하루키?"라고 생각하면서도 왜(why) 일본 작가 하루키를 선정했는지 궁금하긴 했다. 그는 그의 나라와 사뭇 어울리지 않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벗어나 '후지 숲'의 상실의 시대'를 극복했을까? 기억하기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그 삼십여 년 전에는 우리나라에 아직 한가하게 '상실'이란 없었다. 그보다는 정신없이 '바쁨'의 시대였고 하루하루 상실감을 느낄 여유 없이 무언가로 바짝 채워나가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도 '상실감을 마주하고 있는 세대가 등장했고 그들은 이미 '노르웨이의 숲'을 떠돌고 있음을 직시하고 있다.
일인칭 단수
그래서 이번 '하루키 챌린지'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을 것이냐고? 그럴리가. 삼십 년 전에 읽은 책은 그 기억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별 기억은 없고 뭔가 '야한책'의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이 '노르웨이의 숲'을 제대로 '상실의 시대'로 남겨두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대신 하루키의 책중 얇고 단순한 것 같은 '일인칭 단수'라는 책을 골랐다. 챌린지고 뭐고 책은 벌써 읽기 시작했고, 이미 글은 너무 많은 글자수를 써서 챌린지 글자 제한에 차고 넘쳐 다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챌린지 득템으로 내건 '하루키 전시 티켓'은 별 관심 없으며 이번에는 연속해 득템키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나 또 보내준 다면 가볼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과 같이 '브런치 앰버서더'에 맞는 굿즈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책이 짧아서 브런치북 연재 30회를 채우기 전 책은 동날 것 같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