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기어이 새 회장님은 회장실로 들어가지 않을 모양입니다. 평소 풍수지리를 중요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정말 회장실을 포기할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책상의 위치를 바꾸거나 해태상을 가져다 놓거나 달마도 같은 걸 걸어 놓으면 막을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 생각이 짧았나 보네요. 아마도 기존 회장실을 기피한 이유는 이전 회장님들이 감옥에 가거나 경영권을 잃고 쫓겨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회장님은 아마도 이번 경영컨설팅을 통해 회장실을 바꾸는 것이 경영권도 지키고 사세를 확장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 확신을 갖은 듯 보입니다. 경영컨설팅이 늘 그렇듯 회장님이 정해 준 답을 내놓긴 하지만요.
회장실을 다른 층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회장실 주변 직원들은 들어내 놓고 만세를 부르진 않았지만 내심 기뻐하는 표정입니다. 회장실이 바로 앞에 있어서 물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 가기도 영 불편했고 회장님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출퇴근에도 영 눈치가 보였거든요. 회장님이 점심 식사하러 나갈 때면 비서가 나와서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먼저 못 타게 막기도 했습니다. 회장실이 다른 층으로 옮겨 가겠다고 하니 벌써부터 자유로워질 분위기에 신이 나기도 한 듯 보입니다. 더군다나 회장실은 접견실로 개방하기로 한다니 외부 손님이 오면 그 좋다던 회장실로 데려가서 자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지요.
그러나 회장실을 옮기겠다고 회장님이 찜한 다른 층에서는 회장실이 마치 기피 시설이나 혐오 시설이라도 되는 듯 싫은 표정이 얼굴에 가득합니다. 하긴 예전부터 회장실이 핵 시설 버금가는 위험 시설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회장님과 오래 대면하고 있으면 정말 방사능에라도 피폭이라도 된 듯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기운이 빨렸기 때문입니다. 그 앞에서 자칫 빨리 대답을 못하거나 한마디라도 잘못 내뱉었다가는 찍히는 건 물론이고 아예 집에 가야 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회사 생활이 엄청 피곤해지는 걸 보아왔으니까요. 그래도 그 방사능도 마다하지 않지 않는 용자들이 있었으니 회장님 곁을 노리는 자들은 늘 있었습니다. 출세 지향적인 그들은 회장님의 가까이서 눈에 들기 위하여 방사능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장님 앞에서 입의 혀처럼 달콤한 말을 줄줄 읊었습니다. 그리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한 순간 몸을 불사르다 사라지곤 했지요. 그렇지 않다 해도 방사능 피폭으로 늘 절어있고 건강이 좋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회장님은 특히 정보보안 시설이 있는 부사장실이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부사장실은 대대로 정보와 보안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사실로 인해 다른 사무실의 수많은 이전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위치를 지킨 부서지요. 클라우드 시스템이 도입되고 서버도 지방의 정보센터로 거의 이전되었지만 부사장은 정보센터로 절대 내려가지 않고 그 사무실을 사수하였습니다. 재혼 한 와이프가 지방으로 가면 이혼하겠다는 뜬소문도 있었고 경영권 분쟁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절대 건들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여하튼 각종 보안 장비며 서버를 잔뜩 깔아 놓아서 이전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고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이 마당에 전산 시설을 옮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영진을 압박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 회장님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회장님은 오너가 출신답게 막무가내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스타일이어서 누군가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결정이 뜻하지 않는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겠네요. 바로 회사 건물의 가운데에 클라우드로 대체되고 서버도 정보센터로 다 옮겨간 마당에 남아 있던 부사장실을 정리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영권 분쟁 때문에 백기사로 등장했던 회사가 지분을 투자하고 주주가 되면서 부사장실 옆에 정보 공유를 이유로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회사도 회사로부터 새 건물을 받아서 이사하고 있는 마당에 부사장실만 남아 있는 것은 좀 이상해 보입니다. 하기야 백기사였던 회사도 아직 사무실을 거의 비워둔 채 임대료도 제때 내지 아니하고 그 공간을 아직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백기사 사무실이 빠지면 직원 휴게실을 만들겠다고는 하던데 퇴사 전에 이용해 볼수려나 있으려나요?
이번 기회에 부사장 실과 백기사 사무실까지 정리하고 직원 휴게실을 만든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부사장 실과 백기사 사무실은 끝내주는 경관에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연결되어 있어 다른 사무실이 무너져 내려가는 반면 이곳만은 호텔 못지않게 삐까뻔쩍합니다. 물론 사무실을 옮기고 바꾸는 것은 돈이 엄청 든다지만 회장님이 언제 그런데 돈 쓰는데 인색하였나요. 직원들 회식에는 엄청 인색한 반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회장님으로 등극한 이 시점이 이 부사장실을 옮기기에 최고의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아무도 부사장실을 옮겨야 된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막 회장 자리에 올랐으니 다들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르는 자리 때문에 회장님 눈치를 엄청 보고 있나 봅니다. 부사장이라도 해도 예전처럼 직원들의 사기를 운운하거나 경영권 분쟁과 비용 문제로 반대하기는 쉬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나서서 절대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시점이기 때문이지요.
놀라운 점은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될까 보다는 회장실이 옮겨가면 자기 자리 배치는 어떻게 되는지가 다들 궁금해하는 듯합니다. 자리 배치는 늘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요. 누가 옆에 앉느냐는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니까요. 싫은 상사가 옆자리에라도 않게 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장실이 옆에 오는 것은 좀 예측이 어렵습니다. 혹자는 회장실이 같은 층으로 오면 기존 회장실 근처 자리처럼 십 년 넘게 써온 책상도 바꾸어 주고 삐걱거리는 의자도 교체해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동안 방치되어 왔던 직원 휴게실도 백기사 회사 사람들을 내보내고 속도를 내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제 제시간에 퇴근은 다 했고 출근도 더 일찍 해야 한다면서 제발 오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럴 거면 아예 뭔가 회장실 이전 기념 인센티브를 약속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핵 시설 같은 것은 인센티브를 약속하고 유치하곤 하니까요.
인센티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는 확실히 더 민감한 사항입니다. 고객만족 부서는 회장실이 같은 층에 있게 되자 고객들의 쏟아지는 민원을 회장님이 직접 보고 이를 빌미로 인센티브를 확 깎아 버릴까 걱정입니다. 옆 부서에는 민원 고객들이 아예 회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보고 회장을 직접 만나겠다고 난동을 피우거나 돌진할까 걱정이고요. 야근을 즐겨하고 일한다는 것을 들어 내놓고 보이기를 좋아하던 부서장은 이번 기회에 야근을 더 시켜서 회장님의 눈에 쏙 들어야겠다고 기회를 노릴 기세입니다. 방사능에 피폭되더라도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부류이지요. 직원 휴게실을 성사를 핵심 성과지표로 넣어 평가에서 트리플 에이를 받아 인센티브를 챙기겠다는 부서장은 벌써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모습입니다. 노조에서는 상경하여 벌써 회장실 이전 반대 플래카드를 걸고 있네요. 이를 빌미로 더 자주 올 듯합니다.
과연 회장님은 성공적으로 회장실을 이전하게 될 수 있을까요? 정말 회장님은 새 회장실로 인하여 기분이 기깔라서 경영을 엄청 잘하고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팍팍 뿌릴까요? 직원 휴게실은 언제 과연 생기는 걸까요? 백기사 주주의 눈치만 보느라 나가라고 말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냥 그런데는 관심 없고 정말 회장실에서 귀신이 나오거나 경영권 방어에만 관심이 있고 부사장실이 경관이 끝내주고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어 그것이 탐났던 것일까요?
모든 것이 잘 되어서 회장실을 옮긴 풍수지리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인센티브도 팍팍 쏴주셨으면 좋겠고요. 직원 휴게실도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지요. 제말 퇴직하기 전에요. 그런데 만약 경영권을 잃거나 사세가 기울어서 인센티브도 없다면 회장실을 옮긴 것도 아무 소용없고 이제 다른 회장님이 돌아와서 전의 회장실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뭐 접견실을 다시 회장실로 회장실을 접견실로 쓰면 되지요. 회장님은 언네나 옳으니까요.
혹 직원 휴게실은 안 만들고 설마 회장님이 그 공간까지 다 쓰려 하진 않겠지요? 과연 회장님은 회장실을 이전하고 인센티브 팍팍 주게 될까요? 믿습니다 회장님. 믿습니다 풍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