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활짝 피어난 것은 아니지만 갖 피어난 흰 꽃이 이쪽에서도 날 봐달라 하고 수줍은 노란 꽃도 저쪽에서 날 봐달라 하고, 그러다가 저기 먼발치 분홍꽃에도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고, 여기 막 올라오는 초록 새싹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날은 포근한데 구름마저 앞을 뿌옇게 가리니 잠시 속세를 떠나 구름 속에서 '유유자적'하기에 좋은 날입니다. '유유자적'이란 여유가 있고 한가하여 걱정이 없는 모양이지요. 꽃들마저 함께하니 '유유화적'이라 해야겠습니다. 속세의 일들일랑 저 구름 속에 묻어 두고, 앞도 뿌연데 꽃마저 피었으니 어찌 서두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속세란 그렇지가 않지요. 마음 한켠으로는 할 일이 태산이니 보기에 따라서는 꽃잎들이 모두 할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구름과 뿌연 먼지에 가려서 방향조차 분간키 어려운 일들이지요. 그러므로 현실은 '일일자적'이지요. 일이 있고 일이 또 있어 일과 맞서야 하는 모양입니다.
밤부터는 이 '유유자적'도 떠내려 버릴 비가 올 듯합니다. 그때까지만 '일일자적'은 잊고 이 구름과 꽃의 분위기에 '유유화적'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