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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pr 25. 2022

운은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

세상은 이제 숫자화 된 과학과 통계가 모든 진실을 말해 줄 것 가지만 인간은 빤히 앞에 놓인 숫자로 된 진실을 보도도 믿지 않는 희한한 존재입니다. 엄연히 극히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로또를 사며 운에 인생의 상당 부분을 맡기고 있는 존재니까요.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하면 된다 퀀트 투자' 같이 숫자와 확률에 대해 신봉하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운'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그 상반되는 관점이 비교되어 흥미롭습니다. 과연 인생을 숫자에 맡겨야 하는 걸까요? 운에 맡겨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미래는 알 수 없어 둘 다 꽝인 것일까요?


숫자가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의 '운'이 미래에도 다시 일어날 확률이라는 비교적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데 비하여 '운'은 그야말로 과거와 상관없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다른 듯합니다.

물론 '운'에도 아예 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과거의 특정 운의 시기에 좋았던 점과 그렇지 않았던 점이 있었다면 비슷한 운이 반복되는 시기에는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운'도 아예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있다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연결되는 접점은 아직은 데이터의 연결 접점이 보이진 않지요. 그래서 '운'은 확률적으로 더 불확실한 것 같으면서도, 그래서 비 확률적으로 확실한 것 같은 아이러니를 줍니다. 한편으로는 숫자가 과거지향적인 것에 비하여 좀 더 미래지향적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알고 싶은 것은 과거보다는 미래이기에 이 알 수 없는 '운'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숫자화 된 확률은 미래의 예측에서 있어 이미 과학이 신뢰하는 상당히 가능성 높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 '가능성'이라는 것은 정말 '가능성'이라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요. 그리고 이 '가능성'은 높은 확률의 신뢰 수준에도 불구하고 잘 벋어나기도 하고, 극히 낮은 확률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면에서 '운'은 어쩌면 그 확률의 바깥 영역을 다루는 듯 보입니다. 예를 들면 여론조사 같은 것을 보면 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 몇 %라고 나오는데, 마치 95%의 확률로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운명은 항상 얄궂게 그 5%의 가능성으로 향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랄까요.


그러고 보면 인생은 그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왜 꼭 그 낮은 확률을 따라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낮은 확률, 가끔 씩 일어나는 가능성으로 인하여 엄청난 변동을 겪으며 삶을 손 두리째 흔들어 놓지요. 그래서 아마도 이 '운'은 인간의 과학이 이룩해 놓은 95%의 가능성을 비웃는 듯 보입니다. 아무리 숫자와 확률과 과학이 뛰어나다고 해도 마치 마지막 5%의 영역은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듯 움직이며, 그 5%의 숨겨진 비밀로 인하여 인생을 뒤바꾸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했던 말이 정말 그렇습니다. 확률적으로는 제일 성적이 좋고, 제일 똑똑하고, 제일 천재 같은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삶을 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지요. 행복까지는 바라지 않고 단지 성공한 삶이라 해도 성공마저도 꼭 그렇게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은 곳에서 꽃을 피웁니다. 마치 운명의 바람 앞에 뛰어난 확률은 잠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절대 운명을 바꾸진 못하는 것 같지요. 어이없이 운명의 바람 앞에 높은 확률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그러므로 '운'은 진정 신이 숨겨 놓은 비밀의 코드일까요? 숫자와 통계와 과학은 정녕 신의 코드를 알 수 없도록 인간에게 준 불완전한 오답 같은 것일까요? 아마 퀀트 같은 것을 사용하면 운을 풀어서 훌륭한 전략을 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신을 대신한 인공지능(AI)이 불가능한 이 '운'의 영역에 도전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운'은 장난을 칠지 모릅니다. '운명의 장난 같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지요. '운'은 장난꾸러기니까요.


그래서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 같은 것은 아예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혼동시키려고 신이 숨겨놓은 것이니까요. 숫자와 확률과 과학으로 '운'을 이겨내고 '운'이 술술 풀린다면 무슨 걱정이겠어요? 다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미래의 힘은 그것을 꽁꽁 감추어 놓고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의 괴적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보란 듯이 그 괴적을 무시하고 나가는 것이 '운'의 힘입니다. 인공지능(AI)을 당황케 하는 마치 '신의 한 수'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이 있다면 지금의 운이 영원하지 않으며, 길게 보면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지요. 겸허하게 '운'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이겠지요.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

한줄 서평 :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은 단지 겸허함이 아닐까요?

내맘 $점 : $$$

난경 지음 / 갈라북스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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