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상은 분명 다른 사람들의 책상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상이 무척 깔끔하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불필요한 물건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 위와 달리 그 위에 깔린 유리판에 안에는 굳이 인쇄해서 자그맣게 오려 넣은 사각형의 글귀들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글귀들 위에는 중간중간 출처 모를 그림 조각들이 글귀들과 천하를 양분하며 북방을 차지하며 남방으로의 확장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모아놓은 글귀와 그림들이 늘어나자 파티션에도 지저분하지 않을 정도의 것들이 자석을 의지하여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저 유리 안으로 들어갈 날을 꿈꾸며 순서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리판 위 책상 중간에 놓인 모니터에는 잠시 자리를 비울 경우 화면 보호기가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세팅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아이돌이 춤을 추며 고혹한 눈길을 건네는 경우가 많아서 이 자리 주인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책상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멍하니 모니터와 책상을 쳐다보며 왈가왈부 한 마디씩 말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러한 관심이며 집회는 업무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겨졌고 이내 어릴 적 반공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붉은 글씨의 보안 경고 창이 모든 모니터에 예외 없이 화면 보호기로 통일되며 그러한 광경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글귀들과 그림들과 심지어 화면 보호기 마저도, 직접적으로는 업무와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만, 간접적으로는,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무척 관계가 깊은 것이어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기에 충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사각의 작은 종이 쪼가리에 인쇄된 문구들은 한때 특히 그러하였는데, 그것들이 책상 남방의 가장 비옥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다 있던 것이었지요. 바로 그것이 바로 저를 한 한때 살게 한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책상을 옮길 때에 벽에 붙었던 종이들은 절벽에서 떨어져 그 형체를 찾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유리판 안의 종이의 글귀들은 고스란히 옮겨졌습니다. 종이를 넣어야 하니 유리판도 같이 옮겨졌습니다. 심지어 책상을 떠나서도 그 문구들은 버려지지 아니하고 어딘가에 오래된 유물처럼 보관되어 있었지요.
그것은 문득 발굴해냈습니다. 별로 오래 묻혀 있던 것은 아니지만 글귀이므로 '발글'이라고 해야 할까 봅니다. 그림들은 파쇄기에 사라졌고, 화면 보호기의 아이돌도 보안 검열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글귀들은 다행히 집게에 가지런히 묶인 채 석방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비록 조금 헤지고 바랬지만 여전히 그 글들은 한때 나를 살게 한 글귀들이었으므로 생명력은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닦아 여기에 옮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