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온몸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깊은 바닥이란 많지 않다. 잠시 쉬어라. 다시 밧줄을 잡고 밖으로 나갈 만큼 기운을 차릴 때까지. 충분히 밖으로 나갈 힘을 모았다고 생각하거든, 그 때 다시 밧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라. 포기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실낱같이 부여잡은 목표가 너무 벅차거든, 자신 있게 줄을 놓아라. 대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펼쳐라.
김난도 / 아프니까 청춘이다 中
어릴 적에는 '상'에는 딱 두 가지 '상'만 있었습니다.
하나는 공부 잘하면 주는 '우등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 번도 결석하지 않으면 주는 '개근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등상'은 그나마 '상'으로 인정하셨지만, '개근상'은 '상' 취급도 안 하셨지요. 오히려 개근을 하고도 우등을 못한 것을 더 싫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학교 나가기를 사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등상이나 개근상이나 똑같은 종이 한 장이어서 가끔 받는 '개근상'도 저에게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쉬는 것은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지요. 그래서 연휴가 조금만 길어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휴가를 길게 쓰면 거의 사탄급 직원으로 심판대에 세울 기세이지요. 쉬는 것은 반 사회적 행동으로 국가에서도 여러 가지 제재를 가하거나 범죄자처럼 만들어서 도저히 쉴 수 없게 만듭니다.
그 대신 일은 언제나 '선'에 가까운 것처럼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꼭 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일도 만들어 일을 더 하면 선행을 하는 것처럼 칭찬을 받기도 하지요. 그래서 빨리 끝낼 일이라도 집에 가서 쉬지 아니하고 일을 보다 더 오래 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프로페셔널'처럼 인정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일'의 신성함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도 일자리를 늘리고 더 오래 일하게 해 주겠다고는 하지만 일을 잘해서 더 빨리, 더 많이 쉬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 사회에서는 '우등상' 보다 '개근상'이 훨씬 좋은 상이였던 것이었습니다. 빨리 끝내고 쉬겠다는 얍삽한 '우등상' 보다는 묵묵히 언제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개근상'이 사실상 더 값을 쳐주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아프면 쉬어야지요.
몸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파도 쉬어야 합니다.
그때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아파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제때 쉬지 않다 보니 이제 몸이 아프더군요.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가 '개근상'을 '상' 취급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개근상' 따위는 필요 없으니 언제든 아픈 것 같으면 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