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입헌 군주제를 통하여 입법, 행정, 사법이란 실질적인 권한을 내려놓고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권한만 겨우 지킨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권한인 '돈'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협상은 '프랑스혁명'처럼 모든 것을 다 잃는 것보다는 훨씬 더 유리한 협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실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의 체제가 '공화제'라고 부르는 것보다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듯이 역시 '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실은 사실 '세금 먹는 하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왕실로 편성된 예산은 년간 4750만유로(약 642억원, 2021년 기준)에 이르고 이는 '호화롭고 슬기로운 왕실생활'의 원천 이 됩니다. 태국 왕실은 제트기 38대를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는 왕실이 소유한 자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태국 왕실의 예산은 년간 89억100만바트(약 3237억원, 2021년 기준)에 달합니다. 이것도 왕실 경찰, 왕궁 부지 개선, 외국인 귀빈 접대 등 간접적으로 쓰이는 예산을 제외한 수치가 이 정도이며 간접 예산까지 포함할 경우 203억바트(7382억원, 2021년 기준)으로 국가의 재정 규모 대비 엄청난 지출이 왕실로 들어갑니다. 일본은 년간 123억2300만엔(약 1270억원, 2021년 기준)의 예산이 책정되었으며 왕뿐만 아니라 왕족들에게 왕족 수당이 지급됩니다.
영국 왕실은 위상만큼 규모가 큰 예산을 자랑합니다. 영국 왕실 예산은 년간 8590만파운드(약 1350억원, 2021년 기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로 관심이 된 영국 왕실의 총재산은 280억달러(약 39조원, 2021년 기준)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중 왕실 재산 운영재단인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195억달러(약 27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버킹검궁, 콘월 공작 자산, 켄싱턴궁, 스코틀랜드 크라운 에스테이트 순이라고 합니다. 크라운 에스테이트에서 발생하는 수익 중 일부가 왕실 교부금 형식으로 지급되는데 이는 실제로는 국유 재산의 수익금이 '왕'에게 지급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을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이 자산은 '왕'이라도 막 팔 수 있는 자산은 아니라고 하네요. 그밖에도 엘리자베스 2세가 개인적으로 물려받거나 투자와, 부동산, 예술품, 보석류 등을 통해 축적한 5억달러(약 7000억원)은 처분 가능한 상속분이며 일반인과 달리 상속세도 한 푼 내지 안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헌 군주제의 '왕'의 재산은 세금의 일부일 뿐이고, 짐이 곧 국가인 절대 군주제의 자산은 규모 자체가 다릅니다. 사우디왕의 경우 자산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약 2조달러(247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지요. 호텔, 요트, 미술품, 축구구단 등 원하는 것은 그냥 사면됩니다. '왕'중의 '왕' 킹왕짱 이요 권한을 내어 놓은 다른 왕들이 부러워할 만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앞 편에서 '왕'은 이제 '왕'이나 '왕'의 자손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꿈꿔도 절대 이룰 수 없다고 했었지만, 그 옛적 황제의 지위까지는 아니지만 합법적으로 '왕'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기대되시나요?"
힌트는 위에서 말했듯 현대 사회가 '공화제'라고 불리기보다는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한 것에 있습니다. 바로 '왕'을 돈 주고 사는 것이지요. '자본주의'의 장점이 그것 아니겠습니까?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딨엇!
바로 국가를 세우 듯 기업을 세우거나 기업을 사서 오너가 되면 왕처럼 군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왕'처럼 굴려면 작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큰 기업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총수'라는 '제후'의 타이틀을 인정받아야 하지요.
공화제는 '왕'의 종말을 기한 제도 같지만 사실상 '황제'를 없앴을 뿐 '왕'이 될 수 있는 여러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현재의 국가와 기업 오너와의 관계는 그 옛날 황제와 제후국의 왕의 위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제에게 제후국의 왕이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제공하던 것에서 단지 국가에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지요. 국가도 실제적으로는 기업의 실질적 오너에게 대하여 '총수'라는 '왕'의 지위를 인정합니다. 스스로는 '왕' 대신 '회장'이란 명칭을 쓰기를 좋아하지요. 세금만 잘 내고 국가에 이바지할 경우 제후국의 '왕'의 내정에는 크게 간여하지도 않지요.
'회장'은 정말 '왕'의 축소판처럼 기업 내에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한 마디면 그것이 법이 되기도 하고 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냥 '사장'과 다르게 특별한 의전을 받고 사생활은 베일에 쌓여 있지요.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꼭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예산을 부여받고 펑펑 쓰기는 하지만 상징적인 존재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귀빈 접대를 주로 하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점은 '왕'처럼 세습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에는 왕실처럼 로열패밀리가 있게 마련이고 나름대로 서열이 정해져 있습니다. 로열패밀리는 기업에 당연히 후계의 지휘를 인정받고 어느새 세자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회장'에는 승계 순위기 있고 '왕'처럼 '회장'이 서거하지 않는 한 그 자리는 쉽게 넘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왕자들은 세자의 자리를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현대판 '왕자의 난'과 '형제의 난', 그리고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말한 비정한 '숙부의 난'도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누구나 꿈을 꾸면 왕이 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요! 물론 여전히 가장 간단한 방법은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왕'이 었던 것처럼 아버지가 '회장'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창업'이 어렵고 기업의 '총수'라는 타이틀을 인정받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자본주의'에는 여전히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아직 명멸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왕'을 꿈꾸는 자, '왕'이 될만한 능력이 있는자, '왕'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자, 언제나 반란죄로 또는 모함을 당해 결국은 처형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