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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Oct 26. 2022

나는 왜 김연아의 남자가 되지 못했을까?

모카 골드를 마시며

연느님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개인사를 놓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미안해서 뒤늦게나마 축하 인사를 올립니다.

"결혼 축하해요 누나!"


아직도 그녀가 입은 드레스며, 낀 반지며, 답례품이며, 살 집이 화제가 되고 있네요.

그러나 이런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관심은 "나는 왜 김연아의 남자가 되지 못했을까?"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다 찾다 보면 108개가 넘어갈 만큼 많을 것입니다. 그 자체가 번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번민의 구덩이에 한번 밀어 넣어 볼까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연느님이 선택한 남자 '고우림'과 견주어 보아야겠습니다.

연하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일단 나이가 많습니다. 한참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연느님이 누나입니다. 누나라고 부를 만큼 훌륭한 일들을 해 내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퉁치기로 합니다.

키도 작습니다. 한참 작습니다. 너무 작습니다. 그래도 연느님보다는 조금 큰 듯합니다. 다행입니다.


노래도 더 못할 것 같습니다. 성악가 출신의 가수이니 멋진 세레나데를 불러주며 꼬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 노래를 불렀다간 잘되다가도 퇴자 맞을 것이 뻔한데요. 그렇다고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지도 않습니다. 지금껏 도대체 뭘 하고 산 것일까요?

집안이나 재력도 훨씬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연느님이 재력이 있으시니 봐달라고 합니다.


연느님을 뚫어지게 바라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만약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면 신고를 당했겠지요. 다행입니다. 아예 만날 기회조차 없어서요.

그러므로 이유모를 강한 끌림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었지요.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지 않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이런 표면적인 이유 말고도 연느님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는 연느님을 스포츠 선수로 생각했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이기도 합니다. 그냥 연느님이 광고하는 '맥심 화이트 골드'는 '맥심 모카 골드'에 비하여 지나치게 맛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커피맛은 연느님도 어떻게 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지, 맥심 화이트 골드가 맛없어도 사랑할 생각 같은 것은 없던것이 큰 문제였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만사가 그렇습니다. 왜 내가 아니고 왜 너 여야하고 하지만 어쩌겠어요.

너는 사장인데 나는 오늘 퇴사하며 백수인 것도, 너는 수상 작가인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도, 너는 김연아의 남자인데, 나는 김연아의 남자가 되지 못한 것도, 뭐 그리 잘못한 것이 많아서, 잘 못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키가 작아서 노래를 못해서 돈이 좀 없어서 뚫어지게 바라볼 기회가 없어서, 이유모를 강한 끌림이 없어서 '맥심 모카 골드'만 먹었던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건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여기서 더 젊어지거나, 키가 더 커지거나, 노래를 잘해지거나 갑자기 돈이 확 많아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할까요? 문제는 다음 생이라고 해서 그렇게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부활했는데 다시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했거나, 윤회했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잘해야 연느님 집 반려견으로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연느님이 입은 드레스며, 낀 반지며, 답례품이며, 살 집은 별로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어차피 김연아의 남자가 되기는 처음부터 글렸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노력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맥심 화이트 골드를 더 맛있다고 이야기했더라면, 혹 "김연아의 남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는 아예 없어서 다행이지요.


지금 좀 더 노력하고 싶어 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런 후회하지 아니하고, 그냥 이대로 살고 싶거든요. 그것이 설령 '김연아의 남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더라도 말이지요.


연느님은 "지금 무슨 멍멍이 소리야!"라고 하겠지요. 그래요 반려견은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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