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맞이하여 무엇을 해볼까 하다가 산에 오르기로 합니다.목적지는 그 험하고 가파르다는 서베레스트 남산!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서울타워를 바라보니 과연 저 서울에베레스트의 꼭대기까지 등반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됩니다. 한때는 서울의 경관과 남산의 자연적인 모습의 복원을 위하여 서울타워의 철거가 검토되었다지요. 그런데 남산에 저 타워가 없었으면 서울의 모습이 좀 밋밋할 뻔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을 정신없이 오릅니다.
숨을 헐떡거리지만 산소 호흡기가 필요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마스크만 쓰지 않아도 호흡이 편합니다. 쌓인 눈이 없어 산사태나 미끄러질 염려는없습니다. 밧줄도 절벽도 낭떠러지도 없는 아스팔트가 쫙 깔린 도시의 산행입니다. 이따금 개들도 산에 오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계단이 나오는 구간은 난 코스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겠지요. 그래도 정상에 이르를 즈음에서는 한 꼬마가 경사가 가팔라 넘어지면 구를 것 같다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넘어지면 어른도 마찬가지야 나도 사실은 무서워' 사실 정상 까지 오를까 말까 잠깐 망설이기도 했었지요.
고지에 오르니 서울타워와 더불어 팔각정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를 한번 내려다봐 줍니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신처럼 굽어보며 인간사 세상의 허무함을 관조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시내 빼곡한 빌딩중 건물 하나는 달라고 합니다. 정작 새해에는 일출을 보거나 소원을 빌지도 않았으면서 비로소 입춘이 돼서야 늦은 새해 소원을 비는 것이지요. 오후가 다 되어 길을 나섰기 때문에 일출 대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뭐 소원을 비는데 뜨는 해면 어떻고 지는 해면 어떻단 말입니까?
입춘이라지만 아직 봄의 증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늘 밑에 땅 밑에 아직 숨어있는 것이지요. 입춘은 그렇게 감추어 놓은 푸른하늘과 초록빛 땅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차갑디 차가운 겨울에 기어이 살아남았으니 이제 따뜻한 기운을 좀 불어 달라고, 그래서 그 온기로 아직 살아있다는 따뜻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기운을 좀 달라고 소원을 빌어 보는 것이지요. 입춘의 길함은 아마도 그러한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금 소원을 꿈꿀 수 있는 기운이 하늘 밑에 푸르름으로, 땅 밑에 초록빛으로 숨어 있어서 언젠가 온전히 깨어나 하늘은 푸르러지고 땅은 다시 초록해져 물들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춥지만 봄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선 길은길하고 또 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입춘대길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