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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Nov 20. 2023

최악의 왕과 최악의 아버지와 최악의 여자를 만나면

feat 드라마 연인

드라마 연인은 남녀간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최악의 빌런 드라마 이기도 니다. 왜냐하면 주인공 이장현(남궁민)은 최악의 빌런을 무려 셋이나 연달아 만나며 완전히 인생 망했기(조졌기) 때문이지요.

첫번째 최악의 만남은 그 당시 왕이었던 인조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인조가 어떤 인물인가 하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인조반정으로 어줍지 않게 왕에 오른 데다가 그래서 정통성도 가물가물하고 능력도 모자라 청나라에 의해 삼전도의 욕을 맛보았던 그 왕 맞습니다. 왕이 이모양이니 백성의 삶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전쟁에 포로에 노예에 공물에 처참함이 극에 달했음을 드라마 상에서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여 줍니다. 이 드라마가 사실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빌런 이야기라는 것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물론 그 책임은 이 왕에게 상당히 있지요. 그런데 아뿔싸 주인공은 이 왕실과 엮이고 맙니다. 볼모로 끌려간 세자와 백성을 돕다가 사랑이고 목숨이고 모두 간당간당하세 되었으니까요.

두번째 최악의 만남은 부친과의 만남입니다. 그의 아비는 원래 노비였는데 한 양반을 모함하고 몰락시켜 그 자리를 얻은 자였지요. 그래서 더욱 나라를 위하는 참 선비인양 위선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체가 탄로 날까 봐 어릴 적 주인공의 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주인공 이장현(남궁민)은 원래 이름이 장현이었는데 이때 이후로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천하를 떠돌지요. 마지막에 아비는 죽은 줄 알았던 이장현이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고도 반가워 하기는커녕 그동안 쌓은 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 아들마저 반역로 죽음을 명하고 들이 죽은 걸 알고 결국 본인도 죄책감자결을 선택합니다. 겉으로는 올곧은 선비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실은 노비 출신의 평생을 거짓으로 쌓아온 꼰대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 마지막으로 최악의  만남은 여자와의 만남입니다. 비혼 주의자였던 이장현에게 하필이면 여자는 꼬리 아홉, 아니 아흔아홉이라 불리는 팜므파탈의 길채(안은진)였지요.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를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길채를 너무 착하게 안 팜므파탈로 그린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역시 엮였다 하면 목숨이 간당간당, 주인공의 명을 재촉하는 빌런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왕과 아비와 달리 이는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 차이점이지요. 그러므로 집착에 가까운 이 여자에 올인은 죽더라도 후회는 없는 선택입니다. 이미 왕과 아비에게 개망한(조진) 삶이지만 여자를 통해 한번 꽃 피워 보고 싶었을까?

결론은 사실상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나 시청자를 위해 살아난 명줄 긴 이장현과 길채의 재회를 통해 해피엔딩을 위장했지만 이미 시대와 사랑은 파국을 맞았습니다. 인조는 나라를 말아먹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아들 세자는 볼모로 끌려가 개고생 끝에 돌아오자마자 이미 독살로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왕과 세자의 관계는 이장현과 그의 아비와 다를 바 없는 구조였지요. 왕의 위세와 아비의 체면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꼰대에 불과한 처사였으니까요. 다만 다른 점은 세자빈도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길채는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이었겠지만 시청자를 위해 살려둔 것이지요.

최악의 왕과 최악의 꼰대들과 최악의 팜므파탈을 만나면 제 아무리 천하에 난다기는 이장현이라 해도 개망할(조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 드라마는 잘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여전히 그 빌런들은 존재한 다는 것을 암시하지. 그래서 잘못 엮이면 랑이고 목숨이고 간당간당 하긴 마찬가지고요. 이럴 땐 장현과 길채가 꿈꿨던 속세를 벗어나 사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담장 낮고 머루주나 마시며 살자는 능군리에서의 삶이었겠지. 그마저 곧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어서 뺏기기라도 하면 어떤 곳도 안전하지 않게 되겠지만요. 역시 이장현(남궁민)은 처음 그 모습대로 비혼에 한량으로 자본주의에 탁월했으니 재물이나 불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세자를 모시던 내시에게 꾐을 당한것이 패착이었지요. 결국 그 내시도 그런 배신들이 세자와 나라를 위한 것이었줄 알았다며 자결하였지만요. 사필귀정, 연인이라 쓰고 인연이라 읽습니다. 전생의 빌런들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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