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터 재테크에 관한 책까지 책이라면 편식을 하진 않지만, 그중에서도 편애하는 장르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중에서도 '그림'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전시회 같은 데 가서 직접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글로 만나는 그림들도 아주 좋아하지요. 설명과 스토리는 그림에 빛을 더하거든요. 물론 그림이 글에 기쁨과 위로를 더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장르가 좀 다른 책입니다. 그림에 '기술'이라니요? '예술'이 아니고요?
'지금까지 '최애'라 생각했던 '그림'에 관한 시각은 책을 보는 '편애'의 시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시각을 아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지요. 한마디로 '그림 타짜' 같은 관점에서 말입니다.
$ 신성함에 기술을 들이대다니!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통해 '명화'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합니다.
'아! 이래서 명작이지'
그런데 그것은 오감 중 특별히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지요. 그것이 '명작'이라면 팍 느낌이 오는 '아우라' 같은 것이고, 명작이지 않은 다른 작품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감각은 타고나는 편일 것이라고도 생각되었지요. 같은 그림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명작을 알아차리는 반면 '그림이 그림이지' 하고 평범하게 지나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것이은 어떤 '눈썰미'나 '감각', 즉 '미'에 대한 '안목'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막연했던 감각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겠다니 혹할만하였지요. '그림 타짜'는 '감각'이 아니라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명화에 대해 어떤 배경이나 감정을 설명했던 책들과 달리, '명화'를 보는 '방법'과 '기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다른 점이지요.
이런 이과적이고 공학적인 발상은 자칫 문과적이고 예술적인 경계에 있어 '무뢰한'처럼 보입니다.
신성한 작품에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잣대를 들이대다니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절대 허락할 수 없어요!'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 '예술' 안에는 '과학'이 들어있었다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왜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는지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였지요.
$ 명불허전
'그림 타짜'의 '기술적 분석'은 사각의 캔버스에 펼쳐지는 균형과 중심점을 철저한 비율과 분할을 통해서 이해시키면서도 그 설명이 '이과적'으로나 '공학적'으로 딱딱하지 않고, 매우 '문과적'이고 '예술적'으로 아주 세밀하고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장점이었죠.
게다가 이런 장르의 책은 중간중간 명화들을 삽입하여 보는 즐거움 더하고 있어 즐거움이 배가 되지요. 비록 구조적 설명이 중심이어서 명화들이 좀 작게 삽입되고 설명을 위해 난도질당하고 있지만, '명화'는 역시 작게 보아도 잘라 보아도 '명화'이니 '명불허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책이고 영화고 한번 보지, 두 번은 잘 보지 아니하는 개인적 성향과, 기술적 영역이라는 반대편의 시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지요.
그리고 그 이후 어느 전시회에 가서는 그림을 요리조리 색채와 구도를 자르고 돌려가며 '기술적'으로 보았다는 것은 안 비밀입니다.
$ 그림은 사진보다는 영화
또 한 가지 든 느낌은 사진과 그림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사진과 그림은 질감이나 느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진은 그림을 대신하여 실제를 옮겨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었지요.
그런데 이 '기술적인 그림'은 물체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내는 것이 아니라, 매우 의도대로 작자의 '생각'을 그려 넣고 있다는 데 대하여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창조'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진도 그 배치나 보정을 통해서 의도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더 실물에 가깝고, 실제를 바꾸기가 어려워 더 사실적으로 찍혀 나오는 것에 가깝지요.
그런데 비하면 그림은 실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작자의 마음대로 거의 '조작'에 가까운 '창조'를 하고 있다는 면에서 놀라운 세계지요.
그런 면에서 차라리 '그림'은 정지해 있는 '사진'보다는 움직이고 감독의 의도대로 조작된 '영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창조'와 '의지'가 담겨 있는 이 '조작'을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이 아름다운 조작이라니
인공지능(AI) 이 글도 쓰지만 작품도 그리는 세상이지요. 물론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잘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AI의 '조작'된 '의지'가 담겨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은 단순한 '모방'의 집합일까요?
이 책은 좀 더 '기술'적이고 심지어 '타짜'에 가까웠지만, 그 반대편의 그림자에 숨겨진 이해로 인해 보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그림'을 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