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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Jun 16. 2022

#04. 핸드크림

오른손과 왼 손, 너의 손과 나의 손

★★★★

글씨마저 그려내다니



손이 시릴 때

손이 까슬할 때,

손이 심심할 때


언제인지 모르게 날이 서늘해져, 마른 손을 자꾸 비비게 될 때


도톰한 것들로 각방의 침구를 교체할 즈음에

하루 종일 분주했던 주방 문을 닫고 돌아설 때

책방에서 나와 아이 방으로 건너갈 때

아이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앉을 때


일을 시작할 때

생각이 나질 않아 펜이 멈출 때


올리브영 세일할 때

새로운 걸 하나 선물 받았을 때


나 말고, 너의 손에 온기가 필요할 때

부담되지 않는, 예쁜 순간을 건네고 싶을 때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보호막이 필요할 때

그이와 나란히 앉아 보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향수를 입고 싶지는 않지만 향기가 그리울 때


좀 이따 만날 친구랑 손 잡을 게 뻔할 때


밤새 주차장에 서있던 차에 막 올라탔을 때

손가락 마디가 유난히 울퉁불퉁하게 보일 때


마음의 준비를 눈에 보이게 해야 할 때

기도손 하기 직전에.


5분쯤 뒤에, 향긋하고 싶을 때

10분쯤 지나 보드랍고 싶을 때


핸드크림을 바릅니다.

요즘 사용하는 핸드크림들




   손을 맞잡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시절을 지나고 있지만 눈빛을 바삐 주고받은 후, 바로 손부터 잡게 되는 이들이 있다. 말랑한 손바닥 살이 닿으면 반가운 미소가 커지고, 거칠어진 손 끝이 닿으면 분주했을 그의 시간을 짐작해본다. 상대의 손을 잡으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늘 차가운 친구의 손은 놀고 있던 다른 손을 더해 위아래로 포옥 안아준다.

  

   어색한 상대와 덥석 손을 잡기도 한다. 눈빛보다 온기가 오고 가야 할 때.  그런 걸 보면, 온기가 필요한 순간을 알아채는 건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 계산하며 관계의 거리를 재는 머리이기보다, 몸 끝에 붙어있는 언제나 바쁜 손인가 싶다. 어색하고 낯선 존재의 손길이 오히려 온전한 위로가 된다. 그렇게 맞잡은 감각의 순간은 고스란히 그 사람이다.  

   잡기도 전에 눈물이 나는 손이 있고, 나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잡아둬야 하는 손도 있다.


   내가, 우리가 잡는 손은 비스듬히 내밀어 짧고 강하게 흔드는 손이 아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그래야 한다면 오히려 양손을 다 내밀어 맞잡고 실컷 흔들다 놓아준다. 내가, 우리가 잡는 손은 대부분 서로의 옆자리에 나란히 선 채로 나의 오른손과 너의 왼손이, 너의 오른손과 나의 왼손이 위아래로 혹은 아래 위로 포개지고 감싸 쥐는 손이다. 잡고 있는 동안 서로에게 할 이야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잡고 있으면서 조금만 더 잡고 싶어지는 그런 손이다.


   그저 손이 하는 사부작 거리는 일들을 즐거워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손잡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한다.  보드라움의 시작, 핸드크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거기 숨어 있었구나 한다.


33% 정도는 무료라던 핸드크림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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