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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Jun 10. 2022

#03. 보석반지

반짝이는 물건은

★★

반지 사탕인 줄.






   하나의 반지에 엮인 네 개의 보석은 각기 다른 빛을 품은 그저 특별한 돌인지, 과학 시간에 나오는 자신만의 기호를 가진 원석인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호기심의 크기가 애정을 증명하는 양, 보석의 이름을 알아내겠다고 온갖 사이트를 검색을 한 듯도 싶은데 어느샌가 시들해졌다. 이전의 이야기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처음엔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게로 온 순간 완전한 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

   유학하던 동생을 만나기 위해 잠시 이탈리아에 갔었다. 안부 확인을 핑계 삼은 여행이었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아름다운 나라. 그 광경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걷고 또 걸었던 근사한 도시들로.

그중 냉정과 열정 사이에 놓인 도시, 피렌체를 여행하며 나는 인생 처음으로 반짝이는 물건, 보석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했다. 도시의 한 편, 길 끝에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어 파는 장인들의 작은 공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리 위로 말이다. 물길 위로 놓인 다리는, 발아래 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잊게 될 만큼 오랫동안 단단하게 터를 다진 곳이었다. 공방 문이 열리고 작고 빛나는 것들이 하나둘 내 걸리면, 현지인도 여행객도 분주해진다. 그 분위기를 타고 떠올라, 나는 평소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빛나는 온갖 물건들에 눈길을 빼앗겼다. 이국적인 공기와 조명에 취하고, 예상치 못한 것들에 홀린 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밤을 그대로 누리기엔 여행자의 지갑은 가벼웠으므로, 손끝을 스친 어느 하나에도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돌아섰다. 게다가 충동적인 결정을 하기보다 계획과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안심하던 나에게, 무언가에 한눈에 반하는 일은 강렬한 위협으로 느껴졌다. 일단 뒤로 물러서는 반응이 당연했다. 그 당시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겪고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컸다.



피렌체의 풍경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그곳의 낯선 분위기와 감정들은 공방의 조명이 뿜어낸 노란 불빛을 입고 오랫동안 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번에 반하는  얼마나 뜨거운 일인지 그런 일은 얼마나 드문지 알게 되었다. 지갑이 든든해져도 갖고 싶은 ‘물건 실재할 가능성 그것을 손에 넣을 기회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얼마나 신나는 지도 알게 되었다.

피렌체를 떠난 후에야.


  동생이 서울로 돌아왔다.  기념할만한 아름다운 것을 들고서.  

보석 공방의 주인이 서랍 깊은 곳에서 이 반지를 꺼냈다고 했다. 그렇게 고이 옮겨진 반지는, 또 다른 여자에게 선물로 건네 졌지만 그녀는 돌아온 동생을 보느라 반지를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흐름을 멈춘 듯 주변의 건물들을 거울처럼 비추며 잔잔히 흐르던 다리 아래의 물길, 서로에게 기대선 나른한 연인들, 흐린 하늘은 아랑곳 않고 서로를 반사해 빛을 만들어 내던 공방의 보석들.

   바로 그 도시를 담고 온 보석반지를 봐줄 이는 나뿐이었다.

   무른 은으로 만들어진 링은 동그랗기보다 동그라미를 따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마저도 특별했다. 색이 다른 네 보석들은 묘하게 어우러져, 소박하게 반짝였다. 세련되게 정제된 액세서리가 아니었지만, 투박했지만, 그 멋은 너무나 보석다웠다.  


   일주일만 빌리기로 했다.  

일주일이 일 년이 되고, 일 년은 언제인지 모를 가물가물한 시간을 넘어섰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반지의 존재를 잊었다가, 어느 날 그 반지가 그 반지인가 물어왔다. 그 물음이 오랫동안 차마 꺼내놓고 싶지 않던 미안한 마음을 털어주었다.

   이미, 긴 시간 동안 나의 것이었다.


   보석이 네 개나 엮인 보석 반지로 외출 준비를 마무리하는 날이면, 다른 어떤 아이템도 추가할 필요가 없다.

세상엔 더욱 크고 화려한 보석이 많으나 내 기준으로, 이 보석반지는 화려함의 최대치다. 그날, 그곳의 반짝거림이 여전하다. 눈이 부시다.

  그렇게 십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석반지는 어떤 날은 남다르게 그리고 대부분의 날엔 익숙하게 화장대 한 편에 놓여있다. 거의 모든 외출에 함께 했다. 그렇다고 보라색 벨벳 상자에 담아 높은 곳에 잘 모셔두기보다는 적당한 트레이에 올려둔다. 보석에 어울리지 않은 대접인가 싶지만, 그저 나와 어울리도록 편안하게 곁에 둔다.    


   


   그림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림 그리기 앱의 기능도 파악하지 못하던 때라, 아끼는 물건을 선별하거나 그리기 쉬운 순서를 고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지나고 보니 숨겨진 마음이 열 일하며 가까이에 놓인 것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구나 한다.


   멀리 두고 온 아쉬움이 고유한 반짝임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지를 세 번째 그림으로, 너무나 엉성하게, 하지만 기특하게도 그림자까지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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