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룬 May 27. 2022

#02. 편지

나를 담고 떠나는

★★★

처음보다 진해진 펜 터치 굿.

자신감이 생겼나요?!

 





  묻지도 못하고, 허락도 받지 못한 채, 혼자 키우는 마음이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머리를 앞서 달린다. 마음이 앞서고 생각은 뒤쳐지니 착각과 실제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혼자 키우는 마음, 그런 일이 생기는 삶을 고대한다.


   나는 서점이나 출판사 둘러보기를 좋아한다.

책의 주변에서, 책으로 먹고 살며 시공간을 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재밌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아온 동네 서점이 있었다. 그곳의 분위기는 계절에 따라 행사에 따라 다채롭지만, 동시에 늘 한결같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다보 한결같기위해 서점지기가 들이는 정성을 알 것 같았다. 나 혼자 이어온 가느다란 연결을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다. 다만, 응원의 함성 소리만큼 열렬히 찾지는 못하던 아쉬움이 있던.

  그곳에서 손님들에게 큐레이팅의 기회를 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언제나 끌리는 편지 문학들을 소개하기로 했다. 나선 김에, 애정을 담아 안부를 묻고 수줍은 응원도 전하기로 했다. 선정 테마와 어울리게 꾹꾹 눌러 쓴 리스트를 편지로 썼다. 너무 길지 않게, 오래전 소중한 문서들이 다뤄지듯 부드럽게 길이든 가죽끈으로 말아 묶었다.

리스트 가장 앞에 적힌, 애정하는 편지 문학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던 서점으로 향했다.

주말의 서점은 예상보다 붐볐고 다들 너무 바빴다. 책을 사고 계산을 하면서야, 서점지기에게 편지를 내밀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준비한 말들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안심시키는 정도의 설명만 겨우 건네고 돌아섰다. 그 편지가 읽혔는지, 안부와 응원이 전해졌는지 몇 날을 궁금해하며 SNS의 피드를 고쳐보았지만 꽤 시간이 지나고서야, 책꽂이 한 편에 나의 큐레이팅이 마련된 옅은 흔적이 서점의 다른 근황에 섞여 올라오긴 했다.


   왜인지 모르게 며칠 좀 서운했다.

그런데 그 서운함을 상대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기대도 애정도, 리스트를 적던 편지지를 고르던 글자 크기를 가늠하던 시간도 모두 나만 아는 것들이다. 혼자 키운 마음만 고스란히 담긴 편지는 어쩌면 부담스러운 감정의 대잔치였을지도 모른다. 서점지기의 반응과  나의 설렘이 닿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 안의 정성도 알아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정성과 진심은 결국 전해진다고 믿지만, 단번에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아니까. 게다가 주변 서점의 모방꾼들 때문에 예민하던 시절이었다. 이후의 일들을 나는 같은 편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책들을 한자리에 줄 세워본 즐거운 놀이였고, 결국 좋은 기억으로 접어두었다.


  편지라면, 주고받는 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는데, 나는 그 일로 편지의 강력한 one way, 일방성을 발견해버렸다.

 편지가 쓰이는 동안에는 쓰는 사람만 살아있다. 설렘과 조심스러움이 실린 한숨,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는 신중한 망설임을 지나,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적고서야, 헤어짐 인사를 끝으로 펜을 뗄 때까지! 쓰는 사람는 편지를 쓰는 동안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 쓰는 내내 마음을 피우고 키우며, 그렇게 내내 자신에게 빠져 편지를 쓰게 된다. 상대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살필 수 없다는 정당한 이유를 들고, 혼자서 저 멀리까지 달려갈 수 있다.

  받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겠으나, 막상 떠올리는 모습이란 못지않은 정성으로 그 편지를 정독하는 얼굴이 아닐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답장의 등장으로 사정은 달라진다.

  둘 사이의 내밀한 교류가 이어지면 애틋함이 피어난다. 머리를 싸고 앉아 단어를 고르고, 마침내 적확한 문장에 마음을 옮겨 담는 수고를 주고 받는 동안 둘은  둘만의 고유하고 든든한 울타리 안에 나란히 서게 된다. 함께 서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게 아닐까.


  편지를 받아 든 이의 의구심이 보낸 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가고, 느리게 주고받는 말들 덕분에 오해가 이해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위해 나는 답장을 기다리고, 가능한 답장한다.


 그래도 유사 이래 편지가 쌓아온 업적이 대단한 터라, 웬만해서는 문전박대당하지 않을 비교적 안전한 전달의 수단인 건 여전히 다행한 일이다.


 툭하면 편지를 쓴다.   

짧은 편지 긴 편지 메모지에 쓴 편지 계절에 어울리는 편지지에 쓴 편지 간혹 키보드를 두들기지만, 그래도 편지의 맛은 손편지인 것 같다.


  손으로 써 내려가는 속도는 결코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므로, 앞서간 마음이 뒤로 돌아오길 바란다.  ‘안녕, 다시 볼 때까지 잘지내.’하고 인사하기 전까지 느리게 천천히 흐르기로 다짐한 마음은 숨을 고른다. 그러면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듣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길 바란다. 쓰는 내내 취한 진심이, 읽는 내내 부담이지 않도록 말이다.


 편지 쓰기는 나를 즐겁게 한다. 즐거움이 한층 진해지게한 그 날의 편지를 그려 보았다.


이전 02화 #01. 까만 연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