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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Jul 08. 2022

#05. 컵받침

삐뚤어도 괜찮은

★★★★

수많은 컵 바닥이 스쳐간 자리가 미세하게 느껴짐.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좋아라 하는데, 바느질은 그러질 못했다.

   자로 잰 듯, 쭈욱 이어지며 한 땀 한 땀 그어진 성실함이 바느질의 미덕이거늘, 내 바느질은 비뚤어지기로 작정한 못난이였다. 어쩌다 봐줄 만하다 싶은 결과물도 뒷면을 보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먼 길 떠나는 땀들 뿐이었다. 봐줄 만하다는 말을 서둘러 주워 담아야 했다. 


   바늘과 옷감이 수직으로 만나도록 방향을 잡고, 흔들림을 부여잡고! 손톱 밑이 노랗다 못해 하얘지도록 힘을 주는데도 어째서 그려진 그림은 지그재그가 되고 마는지 미스터리였다. 한때 십자수로 만든 액자를 애정의 증표로 뚝딱 만들기도 했는데, 비결은 격자무늬가 따박따박 그려진 원단에 있었나 보다. 아름다운 프랑스 자수도 놓고 싶었는데, 격자무늬 원단도 뒷면을 가릴 눈속임도 허락되지 않아 그 마음만 고이 세계 지도 위에 올려놓고, 바늘은 손에서 딱 내려놓기로 했다.  

   그즈음이었나 보다. 살다 보니 바느질이 시급한 일도 별로 없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일이 있는 게 당연하지 하면서 바늘쌈지를 화장대 맨 위칸 팔이 잘 안 닿는 곳으로 보낸 것이.



*


  바느질의 귀환은 레이스로 떠낸 꽃무늬 모티브의 컵받침에서 시작되었다. 그것들은 예쁘다는 말을 내내 들었을 텐데,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아 깊숙이 모셔져 (잊히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살림이 뒤집어졌고, 이삿짐센터 이모님의 눈에 띄어 새 집 주방에 떡하니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그 물건을 보며 그동안 우리 집에 변변한 컵받침 하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주방 살림은 단출한 편이었다, 그나마도 물려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정갈하게 차려 먹고 지내기엔 충분했기에 다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작은 컵받침 하나 없다(레이스... 아름답지만 레이스는 나의 세상에 속하지 않으므로)는 새삼스런 발견으로 주방에 갑자기 큰 구멍이 생겨버린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온-오프라인을 헤맸다. 이거다 싶은 걸 건지지 못했다. 여태 없는지도 모르고 잘 살았으면서, 컵받침 없이 보낸 지난 시간을 전부 보상해야 하는 것처럼 찾고 또 찾았다. 하나같이 밋밋했다. 그저 네모나거나 동그랗기만 했다.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 종족답게, 홀렸던 쇼핑의 결론은 “만드는 수밖에"였다. 


  실과 바늘이 봉인에서 풀려나며 내게 물었다. 

바느질을 다시 한다고, 정말 홈질을 해낼 수 있는가, 홈질만으로 될 일인가, 시침질 박음질 감침질 등의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하면 어쩔 텐가.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어디서도 찾지 못한 컵받침을 바느질로?! 완성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새 집에서의 출발이니, 그 큰 구멍을 메꾸어야 했다. 바늘귀에 실을 꿰기로 했다.


  바느질 솜씨꾼들은 어느 시장을 다니는지도 몰라서, 그런데 또 잘 모르니 눈으로 확인은 해야 해서, 북아트 용품을 사곤 했던 홍대의 재료 샵으로 갔다. 원단을 고르고, 헤드밴드도 샀다. 대단한 결심에 어울리는 새 바늘도, 밑선을 그릴 때 쓰는 파란색 전용 펜도 다시 샀다. 장바구니가 찰수록, 자신감도 차오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책방 구석 쌓아둔 상자에서 십자수할 때 사모은 색실들도 꺼냈다. 톤온톤, 그러데이션 뭐라도 가능할 실들이 십 년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대체 컵받침이 뭐라고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헛웃음이 새어 나고, 번번이 다시 풀어내야 했던 험난했던 바느질 라이프가 자꾸 떠오르는 중에도, 나는 신이 나 있었다.


   컵받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1. 원단을 11cm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재단하고, 완성본에서 보이게 될 면을 안쪽으로 맞붙인다. 

   2. 1cm씩 들여 바느질 선을 그려주고, 시침핀을 꽂아 고정한다. 

   3. 어울리는 색실을 골라 바늘에 끼워, 정사각형의 세 면과 나머지 한 면의 1/2 지점까지 홈질한다.  

   4. 홈질 구간이 끝나면 매듭을 짓고, 꿰매지 않은 자리에 생긴 구멍으로 맞붙은 원단을 뒤집어준다.     5. 젓가락을 찔러 넣어 모서리를 뾰족하게 손봐준 후, 구멍을 막는 감침질을 해준다.  

   6. 감침질이 끝나면 매듭 끝을 짧게 잘라 안쪽으로 감춰 넣는다. 


   홈질은 실이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은 부분의 간격이 같아야 한다. 제대로 한다면 앞면과 뒷면의 결과가 같아야 하는, 과거의 나에겐 넘을 수 없던 바느질 법이다. 감침질은 원단 모서리를 용수철 모양으로 돌돌 감는 바느질 법이다. 용수철의 크기와 모양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몸소 실현해내고 마는 바느질 법이다. 그 와중에, 그저 네모난 모양만으로는 아쉬울 것 같아 책 등에 들어가는 헤드밴드를 나만의 시그니처로 삼아 달아 주었다. 뒤집었을 때 예상한 위치에 가도록 얼마나 치열하게 계산을 했던지... 

처음보다 더 많은 시간이 묻어난 지금의 컵받침들. 오랜만에 전부 꺼냈는데 하나가 안 보임! 



  손으로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완성된 컵받침이 쌓일수록 재단하는 가위질은 빨라졌고 바늘의 움직임도 짧고 간결해졌다. 바느질 솜씨가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급한 성격은 그대로이니 한 땀 한 땀이 아닌, 두세 땀 세네 땀이 한데 묶였다. 속도는 늘었지만 선긋기는 여전히 한 번씩 튀어나갔다. 그런데 컵받침을 만들 땐 원단을 뒤집는 과정이 있어, 삐뚤거리는 홈질이 전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감침질만 고르게 하면 완성본은 완벽해질 일이었다.

   

  가내 수공업은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놀릴 수 있어 홀가분하기도, 혼자만의 생각을 피워내기에도 한 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다준다. 초대한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좋아하던 음료를 기억해내고, 어느 컵을 꺼내 받쳐내면 어울릴까, 좋아하던 색깔이나 콘셉트를 맞춰주려 그들의 시간을 돌려보기도 했다. 성긴 땀 뒤로 생긴 선은 가지런하기도 빼뚤거리기도 했지만, 그 틈에 잘 대접하고 싶은 내 마음도 꿰어 넣었다. 

   컵의 테두리에서 똑 떨어진 커피 방울이, 얼음 컵에서 흘러내린 물자국이, 그렇게 쌓여갈 시간들이 내가 만든 컵받침에 스며들 것이었다. 근사한 물건이 될 터였다.


    들쑥날쑥한 바느질이 더 이상 불성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한 줄 선긋기만이 완성에 닿을 것이라 여겼던 나는, 한 땀씩 간격을 달리하거나 바늘이 드나드는 각을 조금씩 틀어 보면서 서툰 솜씨를 변주하게 되었다. 일부러 손끝을 삐뚤빼뚤 놀리며 어설픔을 품고 재미를 더하는 나만의 솜씨를 발견했다.


   고심하여 고른 원단들은  '조용한 숲', '파란 도시', '얌전한 손길' 같은 그룹 이름도 가진 컵받침이 되었다. 하나 둘 만들다 보니, 동시에 열두 명 대접 가능! 충분한 컵받침으로 나의 주방은 꽉 찼다. 


   다정한 친구들은 우리의 티타임을 기다린 컵받침을 보고 한 마디씩 거들며 어설픈 솜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혼자서 얼음 가득 찬 유리컵을 테이블에 올릴 때, 홀로 젖어 가는 컵받침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커피를 마시다가 앗뜨! 하고 흘려도, 컵을 타고 내려간 커피 방울을 보고 있노라면 둘도 없을 이런 느낌이 그대로 잘 마르도록 궁리한다. 

   우리의 시간, 나의 시간들이 스며들 물건이다. 



  마주 앉은 그대 앞으로 손길을 건네고, 혼자만의 시간에도 정성을 들이는, 사소하지만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나만의 방법은 컵받침을 내어 받치는 것이다.

나의 컵받침들 중 하나를 눈을 감고 뽑아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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