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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Feb 29. 2024

스무고개 - outro

더 낫거나 좀 다르거나, 다음엔.

   그림 그리기는 무얼 그릴까 주변을 둘러보는데서 시작되었다. 사방이 그릴 대상이었기에 초보로서 마땅히 그리기 쉬운 것을 골라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초보가 아니라 완전 초보인 나로선 실은 쉬운지 어려운지를 가늠해 낼 기준도 없었던 셈이다. 그림으로 그리겠다고 고른 물건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아꼈고 그래서 더 자주 손을 뻗게 되던 물건이니 손쉽게 눈앞에 둘 수 있었고,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다.


   그림에 글을 더하는 과정은 작은 물건 위로 내려앉은 생각들을 길어 올리는 작업이었다. 가벼운 상상력이나 납작한 문장들은 부끄럽지만 ‘만들어내는’ 이야기조차, 그 물건을 시작으로 하고 있음이 반가웠다. 낯선 처음들은 어색한 어울림을 딛고 다음, 그다음으로 이어졌다.

   글 짝을 맞추지 못한 그림이 한 장 남았다. 낙엽을 그린 것인데, 이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림이 완성에 가까워지고, 글이 이야기를 마칠 즈음이면 나는 이전보다 조금씩 더 개운해졌다. 스무 번의 고개를 넘으며 조금 더 잘 알게 된 것도 같다.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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