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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Feb 15. 2024

#21. 스투키

안녕하긴 이르지만

신비로운 식물의 초록, 덕분에 덧칠에 덧칠에 덧칠

★★★


   작은 스투키를 얻었다.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자라는 식물이란다.

식물에 물을 주는 일이라면,  감칠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 때 적당히' 넣어야 하는 소금만큼이나 조절하기 어려운 미션이 아닌가.


  꽃다발은 포장을 풀어 거실 한가운데 꽂아 두었다가, 작은 화병으로 하나둘 옮겨가며 꽃잎이 노랗게 되도록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누리고 보낸다. 마음에 걸리는 거 하나 없이 즐거움을 누리는데 식물을 심은 화분을 돌보는 일은 행여나 그 마지막을 보게 될까 봐 아이 손바닥만 한 다육이일 때조차 그 앞을 서성이게 된다.

  능숙한 식물 집사들은 물이나 가끔 주고 모른 척 그냥 두어도 된다 말하지만, 나는 능숙하지도 아직 친하지도 않다. 심지어 논의 벼들이 농부의 잦은 발걸음 소리에 더 쑥쑥 자란다고 들으면서 컸는지라. 해서 나의 집이 생기고 크고 작은 화분을 들이며 지금껏 그래왔다. 

   나의 게으른 발걸음 때문에 시들어가게 둘 수 없으므로, 달력에 표시해 둔 날짜가 돌아오면 그때마다 정량의 물을 주었다. 어떤 날은 화분 아래로 물이 콸콸 흘러나오고 다른 날은 흙이 모두 마셔버렸는지 그렇지 않았는데, 제각각의 반응에도 나는 그저 부지런하기만 한 농부였다. 식물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지만, 어디서든 물 주기에 대해서만 설명하니 원래 그런 건가 했다.  내 몫의 임무를 잊지 않는 것으로 최선이라 여겼고, 안심했다. 

   

    하지만 창문을 거치지 않은 볕과 바람이 필요했다. 아침이면 창을 열어 바람이 집 안으로 들고 나게 해야 했고, 정해진 양의 물을 흘리기 전 흙을 만져보며 어찌 지내는지 가늠도 했어야 했다. 겨우 익힌 일만 할 게 아니라, 손 끝으로 두루두루 살펴보아야 했다. 돌보는 일이란 살뜰히 살피는 것이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하기 귀찮은 일도 빼먹지 않고, 어느 때엔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했다. 

   하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 편에 선 나는 저 편에 선 상대를 살펴 마침내 그가 원하고 바라는 방식을 알아내야 한다. 그런 다음 물을 주듯 정성을 흘러보내야 한다. 일방적인 열정으로 어긋난 짝사랑이 되지 않으려면, 안온한 관계가 피어나려면 그래야 한다.   


   베란다 가득 화분을 왁자지껄 모아둔 친구네 갔을 때,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서툰 경험을 듣고, 여유있게 그럴 수 있지 하며 받아줄 대범한 식물 집사 앞이었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스투키 한 대를 툭 뽑아 주었다. 이렇게 데려가도 잘 자라니 물만 가끔 주라고. 물…… 철갑을 두른 소나무와 다름없는 과제였으나 받아 들었다.

   

   빈 화분 중 하나를 골라 흙을 깔고 스투키를 심었다. 줄기에 묻어있는 흙 한 톨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해가 잘 드는 서랍장 위에  올려두고 일단은 모른 척. ‘척’이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하지도 않은 대답을 들은 양 물이라도 주게 될까 봐 가까이 보지 않았다. 새로 놓인 방의 공기 흐름을 익힐 때까지는 기다리기로 한다. 2주쯤 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대로 있기로 한다. 흙을 만져본 후에야, 필요하다면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궁금해서 움찔움찔, 아예 잊지 않고서야 모른 척 하는 것도 실은 나 자신과의 싸움인 셈이다. 내가 정해둔 방식이 아닌 저 작은 식물에게 필요한 것을 들고 다가가기 위해 이겨내야지. 

 

   소나무보다 더 푸른 초록이 짙어지도록 잘 키워보고 싶은 스투키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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