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각자의 자리로!
나는 평일 저녁 식탁에서 빠지기로 했다.
늦은 9시에 고기반찬의 든든한 식사를 하고 나면 12시가 지나고, 내일에 가까워져서야 뱃속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이와 아이, 우리 셋이 한 식탁에 앉아 떠드는 시간을 사랑하지만, 다른 때로 해야 할 것 같다. 수다쟁이가 빠지니 30분을 달려 귀가해 번개처럼 씻고 나온 두 사람의 식탁은 세상 고요하기만 하다.
아이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엄마인 나였다. 정기적인 출퇴근을 하지 않았기에 함께하는 시간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아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며 밀착마크를 담당했다. 아기가 아이가 될 무렵부터는 오랫동안 해온 강사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일도 맡았다. 계획을 세우고 관리하는 일을 즐기는 J답게 착착 해냈다. 눈을 반짝이는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누워만 있는 아기였을 때부터 제 발로 걷고 나서도 무지 많은 이야기에, 설명, 대꾸 및 수다 떨기 (그러다 점점 잔소리까지가) 아이와 나 사이에 있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사이라서 행복했다. 나는.
그이는 아이와 몸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었다. 집 밖의 활동을 즐기지 않던 나와 달리, 문을 나서고 다시 들어오는 일이 귀찮지 않다며 꼬맹이의 변덕에 장단을 맞춰주느라 하루에도 여러 번 집을 나섰다. 주말에나 여유가 생기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아이가 아빠랑만 나가면 마지막 기운까지 다 쓰고 들어왔으니 알차고도 찐했다. 포켓몬 성지에서부터 수영장 운동장 한강 수영장 박물관 놀이공원에 이르기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나섰다. 그이는.
우리는 서로에게 더 어울리는,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눠 맡으며 부모의 자리를 맡아갔다. 날마다, 실은 모든 순간이 부모로서 처음이었기에, 밤이면 침대에 누워 아이에 대한 일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고 다시 한번 한 팀으로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물론 의견의 차이도 있었지만, '방향을 같이 한다' 혹은 방향을 같이 하기 위해 ‘애를 쓴다’에 대한 암묵적 합의는 단단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거의 맹세하다시피 한 약속이므로. 사실 그 합의, 아니 비장한 결의는 부모 됨이 처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하게 되는 과장되고 거창한 의식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서로에게 든든한 육아 파트너가 되어주면서.
아이가 십 대가 되면서, 엄마의 밀착마크를 떠나 생존할 수 있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하면서, 아이와 나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 투닥거려도 잠들기 직전까지 같이 누워 수다를 떨고 나면 결국엔 해피엔딩이었는데, 아이의 잠자리까지 다가가기 어려운 날이 늘어갔다. 말이 길어지면 갈등이 깊어지니, 말하지 말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
아이의 변화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뻔히 알면서도, 한동안 힘들었다.
어느 날 여행 중인 배우가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하나씩 실행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네.”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 흐뭇하게 보던 중에 찔린 기분이 들어, 오~ 엄마를 잘 아는데?! 했더니,
“알긴 하죠.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지.”라고 말했다.
아이 말이 정답이었다. 그런 말을 할 만큼 아이는 자랐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꼭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잘 알고 있다는 생각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키운 것일 뿐 여전히 알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하는 것일지도.
아이의 변화를 실감하며 조급했던 마음이 느슨해졌다.
그이는 좀 달랐다. 늘 내 편을 들더니 아이의 입장을 대신 설명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를 알고 나를 아는 그이의 적절한 필터링이 도움이 되었다. 성별의 차이로 아이와 나의 관계를 납작하게 해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애써 부인할 일도 아니었다. 그 또한 나의 좁은 판단이었던 듯하다.
주변에서는 사춘기 아들에게 엄마보다 아빠가 가까운 게 낫다고 했다. 마침 축구가 시작된 덕분으로 우리의 역할에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훈련 마친 아이를 픽업해 오는 그이에게 아이와 단둘이 있는 루틴이 생겼다. 둘이 뭐 하며 왔냐 물으면, 그냥 뭐… 별다른 거 없는데?!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불편하지 않은 두 사람.
학생 축구 선수의 보호자로서, 그이는 운동장에 나가고, 감독님과 대화하고, 축구 관련 정보를 알아보고, 자신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 필드가 돌아가는 방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공부한다. 양육의 고난도, 카페 가입 - 유소년 축구선수 보호자들의 카페 가입- 도 하고 말이다. 좋아하는 캠핑 유튜브보다 축구 교육에 관한 유튜브를 더 보는지 알고리즘이 달라졌다. 현시점에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에 적극 관여함으로 그이와 아이의 대화는 깊어지고, 관계는 더 끈끈해지는 듯했다.
맘카페니 단톡방이니 불려 다니는 동안 초딩 땡땡맘 노릇에 진이 빠졌던 나로선 내심 다행이었다. 그이는 흘려듣기가 가능해서, 타격이 덜하단다. 이제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운동 가기 전 간식 먹는 잠시 동안 정도다. 하루를 잘 보냈는지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빠르고 짧다. 아이로서는 폰을 하면서 쉴 수 있는 시간도 그때뿐이니 아쉽지만 이해해 본다. 입씨름을 하기엔 그 시간이 아까웠다. 그저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도 웃어본다.
우리의 수다는 멈추었고, 나는 아이에게서 한 발 물러났다.
그이와 아이 사이에도 물론 갈등이 생긴다. 상처를 주고받는 중이기도 하다. 괜찮은 척 둘 다 입을 닫아버리는 게 보이고, 나는 그 점이 문제라고 여기지만 끼어들 수는 없다. 당사자들이 나의 개입을 원치 않으므로. 그이는 그런 갈등마저도 둘의 몫이라 한다. 나와 아이의 유대는 온갖 파도가 지나간 결과이므로, 자신과 아이도 마땅히 겪고 지날 부침이 있다고.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귀띔해 주어 지름길로 이끌고 싶지만, 그 마음도 내려놓고 한 발 더 물러난다.
그렇게 우리의 자리가 바뀌었다. 주 양육자를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지만, 아빠의 일과 엄마의 일, 강도와 정도가 달라졌다. 이 모든 변화는 아이가 잘 자란 덕분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결국에 아빠인 그이도 한 발 뒤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 여정의 끝에 아이는 오롯이 혼자 나아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아무래도 아이의 일정대로 훈련이랑 경기를 다니다 보니, 시간도 많이 쓰고 수고도 꽤 하는데, 자칫 마음이 전부 다 아이에게만 쏟아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우리는 ‘아이에게 몰입하지 않기’로 정했다. 티 나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며, 나는 바로 이 브런치 연재를 준비하고 그이는 중국어 기초반을 등록했다. 주말 훈련에는 함께 나서더라도 운동장에 있지 않고 근처의 근사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 중이다. 취향대로 진한 커피와 아인슈페너를 시켜놓고 아이가 땀 흘리며 공차는 동안,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한다.
나란히 걷던 둘이 셋이 되었다.
계획은 했으나, 늘 처음을 맞고, 언제나 이럴 줄 몰랐던 일들을 당한다. 서툴고 힘겨워도 부디 아빠, 엄마인 우리가 때에 따라 적절한 자리를 찾기를, 돌고 돌아 우리 셋 모두 자신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가끔씩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면 더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