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룬 Sep 13. 2024

응원의 정석

단 한 번의 파이팅

   3월, 유소년 축구의 정규 주말 리그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주말리그이지만 일정상 주중에도 경기한다. 학생 선수들의 출전을 위해 클럽과 학교 사이에 공문과 증명 서류가 오고 갔다. 등록된 선수들은 사이트 프로필 업데이트를 위해 사진도 찍었다. 일정을 공지하고 훈련 스케줄이 계속 조정되며 분주했다. 연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 바로 정규리그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주중에 하는 경기는 늦은 오후이긴 하나, 일이 있는 보호자들은 시간 맞춰 직관이 어렵다.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어야 아이들이 계속 운동장을 달릴 수 있을 것이므로.

   주말엔 여지없이 경기장 주변이 북적북적하다.  

해당 경기장에서는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의 경기가 치러진다. 여러 팀이 한 경기장에 모이다 보니 응원을 위해 모인 관중들, 주로 보호자들과 참관 온 여러 관계자, 의 인파가 굉장하다. 이렇게나 공 차는 애들이 많아? 하며 놀라고, 그 일에 나선 어른들은 더 많아 또 놀란다.  


   경기장의 관중석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본부석을 기준으로, 양옆으로 두 팀의 벤치가 정해진다. 우리 팀의 벤치를 따라 관중의 응원석도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결정된다. 처음 평일 경기를 보러 갔을 땐, 분위기 파악을 하느라 그늘이 드는 맨 뒷줄 자리에 앉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학생팀의 경기엔 휘몰아치는 감동과 감격이 크다. 잘하라고 외치자니 충분히 애쓰고 있었고, 괜찮아 괜찮아하자니 하나도 안 괜찮은 얼굴이 눈에 밟혔다. 선수들의 (특히 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에도 힘이 들어갔고 들썩였다. 소리를 칠 틈도 기운도 없기도 했다. 관중이 많지 않을 땐 관중석의 소리가 공간을 울려 쉽게 운동장으로 흘러갔다.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저 파이팅만이었다. 경기의 흐름을 따라 집중을 위한 적막이 필요하기도, 우레와 같은 응원이 어울리기도 했는데, 아직 경기를 읽어내기도 바빴다. 땀범벅이 되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어린 선수들을 보니, 아니 운동장에 있는 선수의 엄마가 되고 보니 한 번의 목청을 내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주말에 하는 주말 리그 경기를 처음 보러 간 날.

서커스단이 응원 중이었다. 발로 차는 북에 알록달록 응원복을 맞춰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리본이 발사되는 피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앞 경기의 한 팀인 모양인데, 뒷자리 관중의 말로는 굉장한 응원으로 유명한 학교라 했다. 자기 팀의 활약에 맞춰 북소리는 커지고 빨라진다. 행여 분위기가 상대 팀으로 역전되면 또다시 북소리가 커지고 빨라진다. 어느 경기에서는 나무 손바닥의 박수가 귀를 때렸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보던 추억의 응원 도구들이 전용 수레에 가득 운반되면, 확성기의 주도에 따라 응원단이 움직인다. 일사불란하고 귀를 사로잡는 응원이 들리고 나면 나도 모르게 우와~ 하며 곁눈질도 하게 된다. 역사와 전통을 뽐내는 문구도 있고 말이다.

   대부분 보호자이다. 자식에게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같으니 그 열정 모르지 않는다. 응원단의 수가 어마어마할수록 팀 내 선수가 많고 그런 팀을 큰 팀이라 한다. 우리 팀은 상대적으로 작은 팀이라 응원단도 작을 수밖에. 괜히 기가 죽어 어느 날은 집으로 가는 길에 관중석의 소리가 얼마나 들리는지 아이에게 물어봤다.


“잘 안 들려요, 뭐라는지. 그거 들을 정신이 없어요. “


   응원 덕분에 선수들이 힘을 낸다면 좋은 일이다.

다만,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다 같이 하나가 된 목소리이기보다 소수의 목청이 삐죽빼죽 응원할 때는 아무리 대단한 응원단이라도 경기 관람의 요란한 방해였다. 관중석에 감독님 납시어 응원 끝에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지시를 덧붙일 때면 응원인지 함정인지 모를 일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과격한 용어나 욕설을 사용해 시선을 끈다. 주변에서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속이 부글거린다. 그런 응원객과 붙는 날이면, 경기 내내 예민해지는데 이 또한 운동선수 보호자의 정신력 관리란다. 내가 운동선수 엄마된 지 겨우 두어 달이지만, 아닌 건 아니지. 그건 몰상식한 행동이다. 자기 팀을 격려하기보다 상대의 실수와 실패에 열을 올리는 응원도 있었다. 굳이 규모와 소리로 밀어붙일 때면 인류애가 식어간다.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벤치의 디렉팅이 묻히고, 주변 사람들이 불쾌해지고, 무엇보다 학생 선수들에게 하나도 도움이 될 리 없다. 부끄러운 응원들이 운동장까지 들리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른 보호자들과 하나둘 인사를 하게 되면서, 우리 팀의 응원석으로 합류했다. 응원석이라고는 하나, 가까이 모여 앉을 뿐이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 경기를 보고 있으면, 긴장된 마음에 위로가 된다. 운동장의 어떤 장면에 서로 눈빛으로 공감을 주고받으며, 내 아이는 물론 다른 아이들의 선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나면 80분 휘슬이 울리고 난 후, 유대가 쌓여간다. 난 이렇게 운동선수 보호자의 정신을 다져간다.  

  

   처음 팀을 구할 때 응원단 스타일은 생각도 못 한 부분이다. 다행으로 운이 좋았다.  

   우리의 응원 구호는 단 하나 ‘파이팅’ 뿐이다. 두 손을 모아 입 가까이 대고, 팀명을 한 번 파이팅을 한 번 외친 후 손뼉을 친다. 선수들을 향해. 경기 흐름을 잘 읽는 분이 선창하시면 모여 앉은 우리가 바로 따라 외친다. 패스가 연습한 대로 연결되었을 때, 골을 넣었을 때, 아깝게 골이 들어가지 않았을 때, 잘 막았을 때, 먹혔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아이들을 응원한다. 안타깝고 아쉬운 관중의 감정이 묻어나지 않도록, 과격한 응원으로 가지 않도록 우리는 단 한 번의 파이팅을 외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응원은 순간은 교체된 선수가 벤치로 들어올 때이다. 그 선수의 이름을 불러주고 수고했다며 손뼉을 쳐준다. 멋쩍은 아이들도 그때만큼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지난다. 첫 줄전한 아이가 교체되어 들어올 때,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신 그 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진심의 응원은 듣는 모두에게 힘이 된다.

   응원을 절대 삼가야 할 때가 있는데, 상대 선수가 운동장에 쓰러져 있을 때다. 상대 선수의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되거나 부상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에 선수들이 벤치 가까이로 와 물을 마시곤 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잘 보이니 힘내라고 한 마디 거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상대 선수가 쓰러져 있을 때는 응원하면 안 된다고, 팀에 오래 계셨던 보호자에게 배웠다. 


    학생 선수의 경기라면, 응원도 달라야 한다.

응원단끼리의 기싸움 대결이 아니다. 주인공은 운동장의 아이들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힘을 얻는 건, 큰 목소리도 울리는 북소리도 아닐 것이다. 승패보다 성장을, 거친 플레이보다 예의 있는 경기 운영을 응원받을 수 있길 바란다. 그들이 그런 격려와 응원에서 힘을 얻어 근사한 선수로 자랄 수 있길 바란다.

   내 아이를 응원하면서도 운동장에서 달리는 모두를 응원할 수 있는 보호자가 되면 어떨까. 멋진 플레이 끝에 관중석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고, 잘하지 못한 날이면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박수에 힘을 얻는 응원을 우리가 해주면 어떨까.


   관중석의 보호자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한 번씩 여길 돌아본다는 것을. 부모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를 스치듯 올려다본다는 것을. 학생 선수들이 관중석의 모두가 운동장의 모두를 응원한다고 여기길 바란다.

 우리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전 07화 아빠와 엄마의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