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룬 Aug 09. 2024

첫 직관

학생 선수들이 경기 중입니다

   팀의 공식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축구선수의 부모라는 새로운 필드에 들어섰으니, 우리도 새 공부가 필요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익히자며 우리는 상암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상암에 주 경기장 말고도 보조 경기장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주말이면 앞뒤로 빽빽하게 학생들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고, 관계자 및 보호자들이 엄청 몰려 경기장 근처에 주차하려면 꽤 부지런해야 한다. 축구협회가 경기를 기록하고 운영하는 주체이며, 구급차의 대기 (왠지 비장해지는)까지! 축구장이 익숙한 그이에겐 눈에 띄지도 않은 그럴만한 장면이었다는데 나에겐 하나같이 생소했다. 경기장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너무 많은 걸 배우네...

   

   그렇게 그라운드에 들어섰고.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차며 살고 싶어 하는 애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감탄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학생들이 운동장 곳곳에 있었다. 그들은 경기를 마치고 짐을 꾸리거나, 경기 중이거나, 다음 경기를 준비하며 몸을 푸는, 선배들을 돕거나 응원을 준비하는, 물을 마시거나 전략을 듣느라 지도자들과 모여 앉은 다양한 학생 선수들이었다. 학생 선수의 숫자가 몇이다, 축구인이 얼마다 하는 기사에서 본 스쳐간 수치들이 바로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첫 직관. 그날의 경기는 올해 소년 체전에 출전할 서울 대표팀을 가르는 예선전이었다.  U15 선수들의 경기는 전후반 각 40분으로 5분씩 짧고, 그 외 운동장 크기와 선수 구성, 운영 규칙등은 성인 경기와 동일하다. 전광판에서 빛나는 우리 팀 이름을 보니, 입단한 지 고작 한 달밖에 안 되었음에도 국가대표 경기만큼이나 가슴이 웅장해졌다.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스물두 명의 선수들이 넓은 운동장으로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축구공을 따라 선수들은 발 빠르게 달리고, 몸을 던졌다.

   U15 경기의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15세,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그동안 다양한 학생들을 많이 보아왔는데, 운동장의 선수들은 너무 달랐다. 성인이라 해도 그런가 보다 할 만큼 키도 체격도 큰 선수들이 있었다. 물론 작고 왜소한 체격의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다부졌다. 몸도 마음도 단단한, 사람들이었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데, 힘차게 달리며 스스로 일으킨 바람에 옷깃이 날렸다. 나이로, ‘아직’이라던가 ‘학생’이라는 말로, 그들의 능력과 한계에 선을 긋는 일은 당치 않아 보였다. 이기기 위해 경기하지만, 질 것이 뻔해도 경기한다. 승패는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승패를 넘어서 그들이 겪어내는 시간의 가치를 가벼운 말들로 담아내선 안 될 것 같았다. 반나절 관중석에 앉아있는 동안, 앞뒤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선수들은 그저 경기를 뛰고 있었다. 저 가벼운 말들이 운동장까지 흘러가지 않기를.


   공부를 지지리 안 하거나, 말을 지긋지긋하게 안 듣거나, 그놈의 휴대폰을 붙들고 살 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엄마 속을 긁는 사춘기 아들일지도. 아마 그럴 확률이 매우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80분을 포기하지 않고, 맡은 포지션을 지켜내며 여지없이 달리는 그들은 빛이 났다. 경기 중일 때, 선수 본인만큼 진지하고 치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름으로는 고군분투하며 조사도 하고, 제법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기에 이제 이 세계에 들어설 준비가 되었다 여겼는데, 그저 발을 뗐을 뿐이었다. 첫 직관에서 마주한 현실은 땀 방울이 여기저기 튀는 치열한 현장이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싶어 부담이 되었다.

   저렇게 버텨내야 한다고.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고. 승패를 내야만 하지만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고. 아이의 선택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지켜볼수록 감동이 밀려왔다. 선수들의 눈엔 긴장이 가득했지만, 그마저도 기꺼이 감당하는 기개는 단단했다.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계획보다 아이가 앞으로 경험하고 배워나갈 시간들, 그로 인해 더 멋지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아이는 첫 그라운드를 밟으며, 자신의 선택 뒤에 이런 장면이 있을 거라 예상했을까. 아니면 덩달아 긴장해 아무것도 안 보였을까. 그간 반복해 보아 온 다큐멘터리들로 인해 이 정도쯤은 운동선수의 삶에서 당연한 면면이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았을까.

    아이는 후반전 교체로 운동장에 들어갔다. 신고식 같은 것이었을 텐데, 출전이라는 예상 밖의 상황에 놀란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하고, 급기야 화장실로 자리를 옮겨 심호흡까지. 아니 왜 내가 더 긴장을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러는 사이 아이는 꼬박 40분을 달렸다.


    며칠이 지나고, 그날의 긴장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나는 말로 물어보았다.


“엄마도 참, 경기 중인데 그냥 뛰는 거죠.”


   아이에게 당연한 시간이 되려 나보다. 아이의 다짐은 나의 두려움보다 크고 단단한가 보다.

나는 학생 선수들의 경기를 처음으로 직관한 그날 이후로 운동장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어른이고 보호자이니 운동을 하든 하지 않든 가르쳐야 하는 일들은 많지만, 시합과 경기 중의 일에 대해서는 아이가 느끼고 감당하는 것보다 나의 말이 클 수 없기에 선을 지키기로 했다. 운동장에서 경기 시간을 지켜내는 학생 선수에 대한 존중과 인정의 엄지 번쩍을 보낸다. 완성형이 아닌 과정에 선 그들에게 응원을 아낌없이 보낸다. 나의 아이에게도 꼭 그렇게 할 것이다. 크게 숨을 몰아쉬어야 할 때가 와도, 그날의 감동을 애써 기억하며 입을 꾹 다물어 보련다.

   멋진 축구 선수가 되어가길, 바람을 일으키며 운동장을 달리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이전 05화 달라진 시간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