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뭐 이렇게 시시한 영화가 다 있지 싶었다.
이 영화에는 운명 같은 만남도, 그 만남을 방해하는 드라마틱한 갈등도 없다. 두 사람은 별것 아닌 계기로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오늘 영화를 다시 봤을 때는, 원래 사랑이 그런 거구나 싶었다.
수트 빼입고 드레스를 입은 드라마 속 선남선녀가 운명적으로 만나 격렬하게 사랑하는 일보다는, 영화 속 상우와 은수처럼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사랑에 빠지고, 사랑해도 멋들어진 말 한마디 못 해 그냥 서로를 보고 말없이 웃으며 사랑하는 일이 더 많다.
펑퍼짐한 옷차림과 좁디좁은 집구석, 조금은 남루한 부엌을 배경으로 모두의 사랑이 펼쳐진다.
이토록 여백이 많은, 시시한 영화가 한국 로맨스 영화계의 걸작이 된 건, 관객 모두가 이 영화의 빈 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 넣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