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거창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나 계급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평론이 나왔고, 굳이 더 설명 안 해도 될 만큼 영화에 명료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내가 「기생충」을 보며 느꼈던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만을 말해보려고 한다.
1. 가난과 화목
한 가정이 가난하면서 화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 전화며 와이파이며 다 끊겨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수준에 이르면, 그 가정에는 단순히 누군가와 연락을 못 해 겪어야 할 불편함보다는, 비참함만이 온 집안을 휘 감싼다. 대개 그 상황에서는, 가장이 그 자격지심을 견디지 못해 가족들에게 화를 내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너지기 일쑤고, 부인은 그런 남편을 원망하며 자신의 삶을 비관한다. 또 자식들은 그 가정이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숨기고, 부모에게 뭐 해준 게 있냐며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십상이다. 가난한 가정을 갈가리 찢어놓는 것은 가난 그 자체라기보다는 가난으로써 파생되는 가족 간의 부정적 감정들이다. 하지만 영화 속 기우(최우식 역)네 집안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와이파이가 끊겨도 정말 와이파이가 끊긴 만큼의 불편만 감수하며, 가장인 기택(송강호 역)은 그런가 보다 하고 태연히 식빵을 뜯는다. 자식들도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다시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을 찾는다. 빌어먹고 훔치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가정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게는 박 사장의 가정보다도, 기택의 가정이 더욱 이상적이었다.
2. 영화의 구성
누군가는 봉준호 감독이 중산층에서 태어나, 가난한 가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영화를 잘못 찍었다고 비판하던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 가난하고도 화목한 기우네 가족은 영화의 전개를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것이다. 기우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영화가 전개되지 않으니까.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이 다소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비롯한 모든 작품에서 꼭 엄밀한 현실성이 지켜져야 하는 건 아니다(정말 현실적으로 가난과 가정에 대해 다룬 영화를 원한다면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추천한다).
그렇지만 영화 구성에서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다. 가장 컸던 아쉬움은, 기택의 감정선에 대한 표현이 적었다는 것. 가난한 가정을 이끌고 가족들에게 나쁜 짓을 시키면서, 은근히 무시받아 결국에는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까지의 감정선을 더욱 세밀하게, 또 비참하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가장 울리는 건 다른 사람의 마음이기에, 감정선이 더욱 잘 표현되었다면 우리는 기택의 마음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이들의 표정에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또한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만의 묘미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 내면에 보이지 않게 메시지를 녹이는 것. 그러한 의도였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이 영화의 구성에 만족한다.
3. 누군가에게는 동정을, 또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기우네 가정에 대한 동정을, 누군가는 박 사장에 대한 분노를, 누군가는 여느 재벌 드라마에서처럼 만큼 나쁘지도 않았지만 비참한 결말을 맞은 박 사장네 가정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또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불편함을 느꼈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부러움만이 느껴졌다.
가난하고도 화목한 기우네 가족도, 빚쟁이에 쫓기고도 남편을 먼저 챙기는 가정부네 부부도, 조건이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과외 선생님을 좋아하는 다혜도 부러웠다. 집에 물이 가득 차 지하수가 역류하는데도 울지 않고 담배나 한 대 피우는 기정(박소담 역)의 모습도 멋있었다. 반면, 빈곤이나 사회구조에 관한 내용은 이미 알고 느끼고 있던 부분이라, 나는 그다지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거나 찜찜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각자에게 결핍된 부분만을 채우려고 하는 거겠지. 「기생충」은 영화 속 인물이나 사회 전체보다는, 관객 각자의 결핍과 이상향, 또 그것과의 괴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해주는 영화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