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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Apr 09. 2023

오아시스

우울에 맞서 해야할 일

우울감을 핑계 삼아 아무것도 안 한 지 벌써 2주가 넘어간다. 그 2주 동안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개강하기 전에는 그래도 3~40페이지씩은 꾸준히 전공 책을 읽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고작 100쪽이 간신히 넘는 소책자의 서문도 다 읽지 못하고 있다. 간신히 수업의 진도는 따라가고 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냥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이나 매만지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가고 싶은 연구실에 가는 것을 거절당했다. 교수님이 작년부터 안식년을 내고 사업을 하셔서, 당분간 신입 원생을 받을 계획이 없다고 했다. 미리 알아보지 못한 내 잘못이다. 나는 이 연구실만 보고 1년을 준비했는데, 그 모든 기간이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안 그래도 비인기 부류라 연구실을 찾기 힘든데,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연구실에 참여를 요청하는 족족 거절당하고 있다. 아마 내 학부 전공이 지금의 전공과는 연관이 없는 것이어서 그럴 것이다. 거절당할 때마다 혼자라는 생각이 커진다.


이곳에 구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와보니 아무것도 없다. 방향도 잃었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방법도 없다. 넓은 사막 한가운데 혼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제까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찾고 위로해 줘서 고맙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많이 응원해 줬는데. 내가 그만큼 못 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제때 챙겨 먹고, 밤 12시에는 불을 끄고 눕고, 혼자 있을 때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고, 폭식하지 않고, 사람들을 피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일상은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안다. 이런 규칙마저 지키지 않으면 더욱 속절없이 내가 무너질 것 같다.


밤의 학교를 내려다본다. 나는 모교와 그곳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내가 언젠가는 그만큼 이곳을 사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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