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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Apr 07. 2023

스스로 서야 할 나이, 이립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즈음에 학교에서 학예회를 한 적이 있다. 태권도를 좋아하던 나는 단짝과 겨루기 시합을 선보이고자 했는데, 더 멋있는 시합을 위해 친구와 겨루기 각본을 짰다. 우리는 여러 멋있는 기술을 섞어 그럴듯한 합을 맞췄다. 그런데 각본을 다 짜가니 문제가 하나 생겼다. 겨루기 끝에는, 우리 중 누군가 반드시 패배자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나는 고집을 부린 끝에 각본상의 승자가 될 수 있었고, 멋진 이단옆차기 후에 친구는 털썩 쓰러졌다. 나는 부모님들 앞에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지만 친구의 표정은 씁쓸했다. 스물여덟의 새해가 밝은 어느 새벽, 나는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그때의 승자가 내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연락도 끊긴 그 친구에게의 패배를 인정하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스물여덟의 나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좋아하던 태권도는 초등학생 막바지에 그만두었고, 아직 이렇다 하게 이룬 것 없는 평범한 사회초년생. 그런데 이런 내게도 가끔은 열 살의 소년에게처럼,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글쎄요, 그냥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요.”라고 하고, 상대방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꿈이란 게 조금 더 거창했으면 하는 걸까.


나도 대통령이라든지, 과학자, CEO를 꿈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겨루기 할 때처럼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며,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술래잡기나 오락실 게임에서조차 승자가 되고자 했던 그때. 나는 내 인생이 언제나 승리로 가득 차 그 마지막에는 반드시 부와 명예, 성공을 거머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의 예상과 달리, 내 인생은 승리로 가득 차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길 수 없는 게임 상대가 있었고,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더 노력하지 않은 나를 탓했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었고, 승자가 있다면 어딘가에는 패자도 꼭 있어야 했다. 내가 꼭 승자여야 한다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신을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여기고는 한다. 주인공은 죽지도, 실패하지도, 패배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영웅으로 우뚝 선다. 이런 믿음은 적당하면 인생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과하면 패배를 계산하지 않고 달려들 줄만 아는 투우장의 소가 되도록 한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확률임에도 자신은 ‘주인공’이니까, 실패할 리 없으니까, 쉽게 자기의 모든 것을 건다. 투우사가 성난 소를 다루기란 이렇게도 쉬운 일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다. 어른이 됐다면, 자신에게 남들과 똑같은 승률이 주어지고 언젠가 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승리와 패배가 계속 한 사람에게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기고 지는 것,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 명예를 얻는 것,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은 이렇듯,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어내는 줄로 안다. 학예회에서 친구의 배려 덕분에 승리를 얻은 줄도 모르는 철없는 열 살의 소년처럼.

 

흔히들 서른을 이립의 나이라고 한다. 스스로 서야 하는 나이, 서른. 그 나이가 가까워져 가는데 우리는 아직도 행운이나 타인의 도움, 기대나 평판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어른의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세상이 나를 우러러 봐주기를 바라느라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안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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