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일찍 끝나 시간이 애매하게 남으면, 괜히 역 근처의 거리를 몇 바퀴 돌아본다. 사실 만나도 할 말이 없다. 찾아가지 않겠다고 많이 다짐했던 터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만나면 아는 척은 해보고 싶다.
걸으면 걸을수록 외로워진다. 내게는 영화에서 나오는 우연도, 용기도 없다. 막차 시간이 다가와 지하철에 타서도, 칸과 칸을 옮겨 다닌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집에 오면 괜히 실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보니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면 긴 시간 곁에 있었어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면 아주 잠깐 동안만 스쳤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우연은 몇 번이고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 북촌에 눈이 내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