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어떤 내 모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모습들 중에서는, 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을 모두 내보이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해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이 두렵다.
벌써 이 영화를 세 번째 본다. 옛날에는 비현실적이지만 색감은 좋은 영화, 이별의 아픔을 잘 담은 로맨스 정도로 이 영화를 봤다면, 이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우진과, 사랑하긴 하는데 그게 누구인지 몰라 괴로워하는 이수(한효주 역)의 모습이 보인다.
이 겨울이 지나면 나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은 스물아홉 살이 된다. 이십 대 후반은 정말 재미없는 나이이다. 이제는 무언가 이뤄야 할 거 같은데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나이, 무엇도 쉽게 해내지 못하고,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며 무얼 했나 생각하게 만드는 나이. 사랑을 하기도 쉽지가 않다. 이십 대 초반처럼 마냥 사랑만으로 사랑하는 것도 안 되고, 아주 어른스러운 사랑도 안 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모습으로 이수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우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