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들으니 마음이 놓여요

청명이라는데 비는 오고...

by 윤슬

밤새 안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별다른 일없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제와 오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다.

내가 아침잠이 많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미친 듯이 잤다.

깨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듯이 그렇게.

어쩌면 현실을 회피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건가 싶기도 하다.

아까부터 난, 낯 선 전화번호를 들고 미적미적 자꾸만 망설이고 있다.

'무슨 말부터 하지, 뭐라고 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어보자.'


전화벨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여보세요." 한다.

틈도 없이 상당히 반갑게 인사해 오는 바람에 살짝 당황하고 만 나는 엉겁결에,

"안녕하세요. H엄마예요. J어머니 되시죠?"

"J에게 말씀은 들으셨지요? 이런 일로 전화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서로 좋아서 벌어진 일인데 왜 내가 죄인이 되어 사과를 하고 있는 거지?'

속으론 투덜투덜.

"네, H엄마 목소리 들으니 마음이 놓이고 반가워요."

상대도 자식이 볼모인지라 내 전화를 가슴 졸이며 기다렸음이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딸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J엄마의 마음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터이다. 이제나 저제나 얼마나 애가 탔을까나. 잠시라도 미적거린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나 : 많이 놀라고 걱정 많으셨죠. 그런데 애들이 어려서 큰일이에요. 애가 애를 낳겠다고 저러니

우리가 해결해 줘야지 어쩌겠어요. 공부하라고 보내놨더니 무슨 일인지 원...

J맘 : 그러게요. 생각조차 않은 일이라... 우리 큰딸도 아빠가 공무원이라 해준 것 없이 보냈어요.


'결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음의 표현이겠지. 그건 당연하겠죠. 우리도 그렇답니다.'

결혼시키자는 뜻을 확인하고, 서로 두서없는 이야기만 설왕설래하다가 차후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길지 않은 통화를 끝냈다. 그 짧은 시간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느껴지고, 이 따위 통화나 하게 만든 아들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 잠시 숨을 골라야만 했다.

그런데 아들에게 화나는 것보다 더한, 어떤 찜찜함에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기운이 다 다르기 마련인데, 다소 허스키하고 연배가 있음 직한 목소리의 상대에게서 난 살짝 싸함을 감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도대체 이 싸함은 뭐지?


오늘은 청명.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24 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로, 밭농사 준비의 시기다.

그런데 하늘은 맑기는커녕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그래도 밭 갈고 씨는 잘 뿌렸구나.

내 마음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