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ly story
모든 서류들을 준비하고 그 주 주말, 남편과 함께 강남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변호사님께서 우리가 너무 젊은 부부라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내가 비대면으로 먼저 보내드렸던 서류 기록들을 다 확인하시고는 그때의 상황들에 대해 추측을 해서 이야기하시며 설명해 주셨다. 우리에게 소송을 위한 인과관계는 성립이 되었다고 하셨다. 변호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의문점이 있고 이걸 토대로 소송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변호사님의 아주 솔직한 의견을 듣고 나는 마음을 접게 되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병원을 상대로 소송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길고 긴 싸움이 될 거고.. 만약 아기가 태어나서 지금 살아 있는데 장애를 입었다거나 이런 상황이라면 무조건 소송을 진행하라고 할 텐데, 아기가 사망한 상태라 소송을 무조건 진행하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계속 생각날 거고, 법원에도 계속 가야 하고 시간도 할애해야 하고.. 신경 쓰셔야 하는 부분들이 많을 거예요.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사망한 아기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남는 건 돈 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이 길고 긴 싸움을 이어 나가는 게 맞는지 저도 애매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소송은 온전히 엄마, 아빠의 선택이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험하고 소송을 진행했던 사람으로부터 저 이야기를 들으니 누가 머리를 쾅! 하고 때린 것만 같았다. 정신 차려! 하고 누군가가 말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틀린 소리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소송을 진행한다면 정말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남는 게 없었다.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기가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남은 우리의 인생도 생각해야 하니까.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나 못할 거 같아. 소송.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저분 말처럼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우리 아기가 살아 돌아오지 않잖아.." 나는 또 울고 울었다.
남편은 나를 다독이며 가족들과 상의해 보자고 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역시나 가족들도 모두 반대를 했다. 의료사고가 아닐 수도 있지만, 맞다고 한들 병원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거라고 엄청 긴 세월 동안 마음고생, 몸 고생 다 하게 될 텐데 뭘 위해서 그렇게 할 거냐고. 엄마, 아빠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라고 의료사고가 아니라고 믿고 아기 잘 보내주는 게 맞지 않겠냐고 하셨다. 맞다. 모든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혼자 안 좋은 쪽으로 계속 생각을 했던 나였다. 아니 아기가 사망한 정확한 원인에 대해 알고 싶었던 나였던 거 같다.
결국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분만병원에 두 발로 걸어가고 가장 슬픈 생일을 보내면서 아기가 어떤 바이러스 때문에 아팠는지, 왜 위험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와 아기가 의료사고의 피해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때 그 상황에 있었던 모든 의료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나는 알기에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수술대 위에서 생살을 찢기는 고통을 잊을 수 없지만, 나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를 겪었던 것이다. 운이 좋지 않았던 나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인 나이다.
1년 하고도 5개월이 되어 가는 이 글을 쓰는 현재에도
얼굴도 모르는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 뿌려주었던 유택동산에 찾아가 펑펑 우는 나,
아기가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줄지는 모르지만, 다시 찾아왔을 때 두려움 하나 없이 마주할 수 없다는 현실이 미워서 불안에 떠는 나,
지나가는 아기를 보며 우리 아기가 태어났으면 지금쯤 저 정도 되었겠지.. 생각하며 또 슬퍼하는 나.
이런 나 자신이 가끔은 정말 불쌍하기도 하고 이런 내 삶이 억울해서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날도 많지만,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은 고통을 견디고 버티며 좀 더 성장한 내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언젠가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폭풍이 지나가고 잔잔해진 파도를 올라타 넘실대는 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볼 용기가 생길 거라고 믿어본다. 찬란히 빛날 앞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보며 오늘도 묵묵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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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사산, 아기를 하늘로 보낸 경험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히 이 글을 전하고 싶다.
"아기가 아픈 건 절대로 부모님 탓이 아니에요. 임신 중에 했던 일 혹은 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출산 중 선택했던 것 또는 거부했던 것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차 사고가 나는 것처럼 그냥 발생하는 일이에요.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