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기억
그렇게 아기를 보내주고, 우리 곁을 지켜주었던 가족들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쓰고 내 옆을 지켜주며 매번 밥 차려주었던 남편, 본인도 힘들 텐데 내 생각을 먼저 해주었던 남편이었다. 남편과 울고 싶을 땐 울기도 하고, 무언가에 집중할 게 필요했던 우리는 대형 퍼즐을 사서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주가 흘렀고, 남편의 휴가가 끝나고 출퇴근이 시작되었을 땐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과 가족은 내가 혼자 집에 있는 걸 걱정해서 고향에 가길 원했지만, 나는 또 남편을 혼자 두고 가는 게 싫어서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과 가족은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울다가 전화를 받기도 하고, 전화를 받고 울기도 하고 반복이었다. 그 당시 나는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서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에 떨기도 했다. 대학병원에 있는 동안 마음이 힘들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 수 있게 연계해 주겠다고 하여 한번 받아보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두 번은 가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마음으로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나와 같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산모가 있는지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막달사산도 아니고 아기가 배 안에서 아팠던 것도 아니고 아기가 응급으로 태어나고 사망한 케이스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산모는 드물었다. 이런저런 검색으로 글을 읽다 의료사고와 관련된 글도 많이 보게 되었고, 문득 우리 아기가 정말 의료사고로 상태가 안 좋아졌던 거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으며 변호사 상담을 받기 위해 연락도 취하였다. 분만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와 통화를 하며 비대면 상담을 간단히 진행하였는데, 그때 있었던 상황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서 모든 기록을 다 떼오라고 하셨다.
다시는 가기 싫었던 분만병원에 두 발로 찾아갔다. 분만 당시에 입원했던 날들의 모든 기록들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역시나 간호사와 의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담당의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5분만 대면하기로 했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내가 대학병원에 있을 동안에도 전화를 하셨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기에 내가 병원에 왔다고 하니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셨던 거 같다. 몸은 어떤지 그땐 이랬다 저랬다 지금은 산모님 몸 회복에만 집중해라 나중에 둘째 낳을 때 꼭 다시 와라 등등 이야기를 하셨고 눈물을 꾹꾹 참으며 대면 후 서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갔을 때부터 대학병원으로 전원 할 때까지의 모든 기록들을 보며 그날을 회상했다. 그리고 변호사에게 모든 기록을 전달드렸고, 상담받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는 아기가 옮겨진 대학병원의 기록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내 생일 당일에 아기가 있었던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서류를 요청하며 아기가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 왔을 때 담당으로 계셨던 의사 선생님과 잠깐 만날 수 있냐는 내 물음에 간호사 분께서 도움을 주셨다. 얼굴도 모르는 내 아기를 엄마인 나보다 오래 봐주셨던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한 달 이상 지난 시간이었기에 차트를 되돌아보시며 그때 아기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아기 입에서 피가 계속 나왔는데 아마 감염으로 인해 피가 멈추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바이러스 균검사도 진행했었는데 아기가 사망하고 다다음날에 결과가 나왔네요. 음... E.coli균이네요. 대장균이라는 무서운 바이러스였어요. 아기가 감염한 시점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진 않아요. 분만 도중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엄마는 지금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집에서 회복을 하셔야죠. 엄마 몸 회복이 제일 중요해요. 아기가 이렇게 된 건 엄마 잘못 절대 아니고...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여기 보세요. 지금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아기들 리스트예요. 이렇게 많은 아기들이 아픈데 여기서 다 나아서 집에 가는 아기도 있고, 아닌 아기도 있어요. 이 많은 아기들의 부모들 마음 생각해 보세요. 부모 잘못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떠난 아기는 잘 보내주고 엄마 몸 회복에 집중하는 게 저는 좋을 거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참으려 노력했지만 참지 못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과 함께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조그마한 쿠키를 드리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간호사 분께서 내가 딱했는지 돌아다니시지 말라고 집에서 회복 취하시라고 하시며 본인도 첫째 아기 잘못돼서 보냈다고 근데 지금 애들 잘 키우고 있다며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힘내라고 하셨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니 더 눈물이 흘렀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서류를 챙겨 병원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내 생에 가장 슬픈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