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퇴원 다음날은 아기의 화장 장례가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고향에서 언니와 형부까지 올라와서 나와 남편의 옆을 지켜주었다. 나는 산후조리를 해야 할 시기에 하필이면 엄청나게 추운 날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랑 언니는 최대한 내 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목도리까지 하게 했다. 꽁꽁 싸맨 탓에 이동하는 차에서 땀이 주르륵 났다.
연화장에 도착해 장례 절차가 진행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렸다. 연화장 안내 화면에는 입관 중, 화장 중, 유골인도 중 등 장례 절차와 고인의 성함이 적혀 있는데 우리 아기는 이름도 없어서 OOO아기(태명)로 뜨는 게 너무 슬펐다. 그게 너무 슬퍼서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내가 울면 엄마도 언니도 울게 되기에 꾹꾹 참으며 먼 산을 보았다. 병원에서 아기가 도착했는데 아기의 관은 너무 작았다. 또 그 모습이 너무 슬퍼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내가 아기 옆에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기에 소리 내어 아기 태명을 부르며 미안하다고 울부짖었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어엉어어엉어엉엉"
엄마와 언니는 내가 쓰러질까 봐 노심초사 옆에서 붙잡고 같이 울어주었다. 형부는 울부짖는 내가 탈수될까 봐 물을 가져다주셨다. 울다 지친 나는 남편 품에서 눈물을 조용히 흘리며 아기가 훨훨 좋은 곳으로 떠나갈 수 있도록 옆을 지켰다. 아기라 그런지 화장도 엄청 빠르게 끝났다. 유골인도 하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불타 남은 분골을 모으고 있었다. 그 마저 정말 작고 소중했다. 나무통에 1/10 정도 되는 분골이 담겼다. 직원 분께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라고 하셨다. 우리는 아기에게 거기서는 아프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인사했다.
유골함을 받아 들고 우리는 야외 유택동산으로 이동했다. 유택동산은 언덕을 걸어 올라가 가장 위 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길을 올라가는 동안 너무 춥고 슬프고 아팠다. 유택동산에 도착하여 자연장으로 흙에 뿌려줄지, 합동유골함에 뿌려줄지 고민하다 합동유골함에 넣기로 했다. 남편이 아기 유골함 안에 든 자그마한 종이 속 소중한 분골을 꺼내었다. 남편은 꼭 다시 엄마, 아빠한테 와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냥 미안하다고 계속 이야기했던 거 같다. 아기를 지키지 못한 게 다 내 잘못인 거 같아서,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기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보내주었다. 아기를 보내주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정말 새파란 하늘과 소나무가 보였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그때 난 생각했다. 이 느낌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겠구나. 역시나 새파란 하늘인 날씨가 되면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가야 거기서는 아프지 않지? 천천히 더 놀다가 엄마, 아빠한테 올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