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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아 Oct 18. 2024

물은 흘러도 여울은 여울대로 있듯이

 엄마랑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 때 이혼했다. 정확히 몇 살이었더라.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뭐가 중요한지 싶어 나이테를 되짚던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이제는 지나간 나이의 숫자를 굳이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삼십 대 중반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미숙한 부모의 나이도 가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운지 추운지도 모를, 애매모호해서 무덤덤한,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투른 계절이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초록색 옷장과 큰 침대, 작은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안방에서 네 가족은 바닥에 모여 앉았고, 한 구성원이 말을 꺼냈다. 엄마랑 아빠가 이제 따로 살게 되었어. 누나가 울자 어린 동생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따라 울었다. 엄마랑 아빠 중 한 명을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 손에 컸어도 부모에 대한 애착이 더 큰 시기였다. 그러다 엄마가 현관문을 나섰고, 아빠는 남매가 좋아하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배달시켰다. 와중에 배고팠던 남매는 울음을 그치고 우걱우걱 음식을 삼켰다.


 오 년이 지났다. 세대주가 아빠에서 엄마로 바뀌고, 전셋집을 전전하다 정착한 목련 나무가 흐드러지게 피는 집 앞에서 드문드문 아빠를 만나는 일상이 반복됐다. 더 이상의 눈물은 없었다. 늘 그랬듯이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데리러 온 아빠 차를 타고 하교하면서 담배 좀 그만 피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십 분간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아빠가 집 안에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떠나는 게 아쉽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이별 아닌 이별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다는 게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만한 눈물샘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고등학교 이 학년 때의 일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은 학생별 면담을 진행했다. 교무실에서 마주한 선생님과의 독대는 삭막했고, 짧은 침묵 사이에 뻔한 질문들이 예상돼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어떻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역시 안 좋은 예상은 벗어나지 않는다. 야속한 선생님은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다 알면서 확인차 물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말을 뱉는 순간 이유 모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근 십 년 동안 잘 메워져 있던 눈물샘이 단 일 초 만에 폭발해 흘러나왔다. 당황스러웠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같은 반 친구가 보였다. 수치심이 일었다.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혹시 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야 이혼은 흔한 끝맺음이자 새로운 시작이지만, 나의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이혼은 비밀스러운 콤플렉스처럼 여겨졌다. 살갗에 핀 주근깨처럼 도려낼 필요 없이 받아들이면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알량한 것이었음을 그땐 미처 몰랐다. 당연했다. 고작 열여덟 살이었다.

 선생님은 우는 나를 강하게 키우려는 듯했다. 곧 성인이 되는 만큼 모든 행동과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훈화로 면담은 끝이 났다. 울 일도 아닌데 울어 버린 나를 자책했다. 왜 공개적인 곳에서 개인 가정사를 들춰야만 했는지 묻지 못했다.


 “넌 부모님끼리 싸웠을 때 어떻게 해?”


 다시 오 년이 흘렀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친구가 낯선 질문을 했다. 가는 주파선이 뇌리를 스쳤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갈등은 선과 악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과 같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억지로 되살려서 해결책을 지어내야 할지, 우리 부모님은 이미 헤어졌다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같이 회포를 푼 지 사 년이 넘은 사이라고 해도 망망대해에 놓인 각자의 인생을 개척하기 바빠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리 만무했다.


“아, 우리 부모님 이혼했어.” 


 이별 아닌 이별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얘기했다. 


“몰랐어. 미안해.”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이제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걸. 단조로운 마침표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와 헤픈 사과가 깃든 동정 어린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봐도 웃음 지을 수 있게 되었거든.


 친구는 최근 부모님 사이가 틀어져 걱정이라고 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애써 중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뿐이었다. 과거의 흐름 속에서 내가 관여하지 못한 미지의 관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계와 같다고. 때 하나 묻지 않은 어린 마음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썼지만 끝은 이별이었다고.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각자의 인생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또 다른 백년가약이 끝을 맺었다. 수업이 끝난 뒤 손수 싸 온 도시락을 먹는 친구를 본다. 늘 나에게 존경스러운 아이다. 일찍이 독립해서 학자금 대출과 전세 대출 이자를 감내한다는 이유로 나보다 앞서 있는 어른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빚을 지고 있는 지금에서야 대단하다고 추켜 보았던 동경심이 씁쓸해졌다. 너도 나와 같이 한 가정의 딸이자 남동생을 둔 누나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여자로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누나가 되어 버린 운명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네가 그 무엇도 아닌 본연으로 남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물은 흘러도 여울은 여울대로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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