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순간
어느 여름날의 일요일. 무성한 안개 밑으로 물방울이 똑똑 안부 인사를 묻더니 이내 거센 빗줄기로 바뀐다. 아무래도 이 집 저 집 다들 무탈하게 잘 지내냐며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눈물로 번진 듯하다.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눈치 없이 참았던 설움을 포효하는 것은 인간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한바탕 빗소리 연주가 잦아들고, 어둠 속에 가려진 빗방울은 또다시 찾아와 안부를 묻는다. 유난히 적막이 싫은 오늘, 귓가가 기분 좋게 간지럽다.
정갈하게 몸을 씻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초여름의 문턱에서 얇은 긴팔을 꺼낸다. 봄비와의 추억을 따뜻하게 간직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