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누난나 Jan 14. 2024

배보다 배꼽 결혼문답 제1차시

결혼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약 1년 6개월 정도 만난 사람과 이번 토요일 처음으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신중한 성격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안 하는 스타일이라 우리 둘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 신중하고 신중한 이야기였을 거라 생각한다. 술을 즐기지 않는 우리 커플은 왜인지 하이볼을 같이 만들어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분이 약 4년 전? 2019년 군대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받았던 결혼문답 세트를 가지고 왔다. 한 권은 자신이 갖고 한 권은 나에게 주면서 이걸 앞으로 같이 채워나가 보자고 했다. 일단 결혼문답을 아무 하고나 하지 않을 그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그 한 권을 줬다는 것은 그 사람만의 커다란 언어였다고 생각한다.


BGM: Elemental OST


결혼문답에 나와있는 첫 번째 질문은

1. 우리의 첫 만남 기억해?

그 사람은 첫 만남이라는 것을 작성할 때 나의 순간순간의 모습들을 적어뒀다. 내가 예뻤다느니 목소리가 특이했다느니 등등. 나는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사실적인 배경들을 적었다. 무엇을 먹었고 어디서 누구랑 같이 봤었고 등등.(첫 만남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적었는데 우린 강남 오목집이라는 족발집에서 족발을 먹었는데 내가 샤부샤부라고 적었다. 약간 삔또 상한 그분의 표정을 봤고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았다. 여기서 살짝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기억하는 샤부샤부는 족발이 나오기 전? 뭇국 같은 국이 커다란 냄비에 담겨 있었고 그걸 내가 그분한테 좀 덜어드릴까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어서 샤부샤부라고 생각했다 ㅎ)


각자 쓴 것을 공유하고 읽어주면서 처음 만났던 그때 그 순간으로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었다. 진짜 솔직하게 말하면 첫 만남에서는 이 사람과 내가 사귈 거라고 진짜 상상도 못 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일단 서로 너무 달랐고 그 사람은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라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 덕분인지 나는 그 사람에게 그냥 편하게 다가갔다. 말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는 거지만 그렇게 다가간 나의 태도가 오히려 그 사람을 편하게 해 줬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만나면서 느껴온 그분의 성격에는 나처럼 다가가는 게 오히려 관계의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었지 않나 싶다.


2. 만나면서 행복했던 순간은?

만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은 정말 많았어서 그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딱 한 순간만 쓰자고 했다. 그분은 우리의 첫 여행지였던 ‘속초’를 썼고 나는 ‘탄천’을 썼다. 그분이 속초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의 추억이 많이 담긴 장소이고 곳곳에 아지트가 많이 있어서 그곳을 나에게 공유해 주었다는 게 큰 의미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만큼 그 사람이 인상 깊게 생각했던 여행이 없다고 느꼈다. 속초에서의 편안함과 다른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 내가 느낀 그 사람은 많이 달랐다. 익숙함과 편안함이 주는 안정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와 반대로 나는 여행이라면 다 기억에 남고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중에 탄천을 고른 이유는 탄천에서 놀 때 가장 적은 돈으로 데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약 3000원으로 다이소에서 물감을 사고 종이를 사서 탄천 한가운데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도 붓이 없어서 손가락으로 그리고 나뭇가지로 그리고 그랬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이라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 돈이 없어도 데이트를 하는 데엔 문제가 없구나… 를 깨달았다. 행복이라는 것을 재정의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때였다. 그리고 이 질문의 연장선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은 매우 성취지향적인 성격이고 무엇인가를 성취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나도 근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걸 느끼고 있었고 그 사람이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나아갈 때 내가 조금 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얘기를 공유하며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 외롭지 않게 해 줄게.’였는데 그 말은 듣지 못했고 그냥 그 사람은 내가 외로울 수도 있을 거라고 이미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 가지를 얘기하고 그분께서는 만만 취하셔서(술은 제가 훨씬 쎄요) 더 이상 질문은 작성을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면서 계속 생각했다.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고 내가 굳이 아니어도 그 사람의 성취를 위해 기꺼이 외로울 수 있는 다른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결혼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Only You라고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근데 끝내 그 얘기는 듣지 못했고 그냥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갖고자 했다. 다음 만남까지 또 일주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전까지 잘 생각해 보자고 다짐했다.


오늘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품어줄 사람이 나라고 말해서였다. 자신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에서 이기적이라고 느꼈고 이기적이라고 느낌을 통해서 나 또한 이기적이구나를 느꼈다. 결혼이란 뭘까? 서로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해도 현실을 헤쳐나가기는 버거울 텐데 자신만 이해받고자 결혼을 선택한다? 과연 그게 나에게는 행복한 결혼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뭘까? 같이 있으면서도 외로우면 행복할까? 진짜 그 사람이 무엇인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 앞만 보고 달릴 때 나를 외롭게 둘 것인가? 나는 외로우면 혼자 견딜 것인가?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일단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할 성격이 나다. 그래서 날 외롭게 두면 아마 귀찮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와의 시간도 만들게끔 할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같이 있어도 외로울 것이고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같이 있을 때도 잘 지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은 나의 모습이 맞긴 하다. 근데 굳이 같이 있는데 외롭게 둔다? 그건 선 넘었지…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서로 생각이 참 많은 커플이다.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생각들이 아닐까 싶다. 생각 없이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이 과정이 소중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론을 맞이하든. 지금의 시간들이 서로 이해의 시간이 될지 이해만을 바라는 시간이 될지는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다. 다음 주 만남 전까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다음 주도 새로운 이야기 혹은 이번 이야기의 연장선에서의 대화를 해봐야겠다.

이전 02화 숨은 원석을 발견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