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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누난나 Jan 07. 2024

숨은 원석을 발견하는 일

결혼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보통 결혼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 뭘 몰라서 결혼한 거야~'라든가 '지금을 알았으면 결혼 안 했지~'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근데 간혹 가다가 '이 사람이라서 나랑 살고 있는 거야. 우리이기에 서로를 감당하면서 사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부모님이 그 사례 중 한 커플이다. 오늘은 그래서 부모님의 결혼 에피소드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은 CC였다. K대학교에서 만나 연애를 약 1년 정도 했는데 애초에 결혼을 전제로 만났다고 한다. 먼저 엄마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주 독립적인 성향을 갖고 자신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기꺼이 멀리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야무지고 똑 부러지지만 깍쟁이 같은 면모를 지녔다. 혼자 살아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방어기제이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아빠는 부모님이 다 살아계시고 둘째지만 장남처럼 자란 전형적인 K-장남 스타일이었다. 독립적이고 똥고집에 책임감 강한 성격의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을까?


1992년 3월 21일 K대학교 실험실에서 엄청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뉴스, 신문, 라디오 할 것 없이 그날의 폭발 사고가 보도되었다. 바로 아빠가 있던 대학교 실험실에서 아빠가 실험을 하다가 폭발사고가 났던 것...! 사고로 아빠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약 5번의 대수술을 마치고 겨우 회복을 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런 아빠의 사고로 엄마는 같은 학교 동아리 선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차 여러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아빠의 병실로 병문안을 오게 되었다. 거기서 엄마는 눈만 나와있는 아빠의 모습에 사랑에 빠졌다. 진실되고 순수한 남자의 모습에 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빠는 어떨까? 아빠는 그전에 이미 엄마가 동아리에서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똑 부러지고 야무진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겁쟁이 아빠는 엄마에게 다가가기는커녕 말도 못 거는 짝사랑남일 뿐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남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스타일이었어서 아빠는 애간장만 타고 있었다고 한다 ㅎ 혼자 열심히 관찰하며 짝사랑 중인 아빠에 대해 엄마가 뭘 알 수 있었을까... 당연히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다가 폭발사고를 통해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서로가 알게 되었고 아빠가 엄마한테 ‘너 내 후배니까 내 병문안 좀 자주 와라.’라고 인생 최대로 용기를 내서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선배의 부탁이고 생사를 오가고 있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나면 최대한 자주 면회를 왔다고 한다. 진짜 아무런 의도 없이 선배의 부탁이었기에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엄마도 마음이 있어서 그 부탁을 들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간 계속 병실에 누워있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병문안 오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옆에서 쫑알거리던 엄마는 점차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여러 번의 대화 끝에 둘의 관계는 깊어져갔고 사귀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삼 개월 뒤에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시작했다.


여기서 나의 의문은 서로 대체 뭘 알고 바로 결혼을 전제로 만났을지....... 생각했지만 그땐 그렇게 진지하게 만나는 경우가 많았고 엄마아빠 둘 다 26,27세였기 때문에 결혼을 많이들 하는 나이였다고 한다. 하여간 둘은 그렇게 1년간 엄마는 대학원을 가기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아빠는 재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저 사랑만으로 한 결혼이었다. 주변의 반대도 무릅쓰고 했던 결혼이었다. 1994년 5월에 결혼을 하고 약 2년간 엄청 싸웠다고 한다. 연애 시절에는 아빠가 엄마를 바다 같은 마음으로 다 받아줬는데 결혼하고 나니 하나도 안 받아줬다고 한다. 알고 보니 아빠는 연애 때 다 참고 살았던 것이었다. 순둥 한 면이 있는 아빠지만 그 똥고집은 아무도 못 말려서 엄마와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많았던 것 같다. 엄마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를 남편이자 자신의 부모님으로 생각했고 아빠를 자신이 존경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아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바라는 것도 많아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니 애가 생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이런 모습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 했지만 둘은 점차 서로에게 맞춰나갔고 안 맞는 부분도 많았지만 맞는 부분도 많아서 많은 대화를 통해 극복해 나갔다.


두 분이 살아온 과정을 다는 아니지만 29년 중 25년을 봐온 나로서는 이런 게 천생연분인가 싶기도 하다. 우여곡절도 많고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돈독하고 두 분들의 언어를 빌리자면 ‘ 다시 연애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이런 부부의 모습을 보며 내세울 것 하나 없는 20대 시절에 그냥 서로 사랑한다는 그 마음 하나로 만나 지금까지 어찌어찌 잘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모르는 두 분 만의 노력이 더 있었겠지만… 나의 부모님을 비유로 묘사해 보자면 그냥 산속에 파묻힌 돌덩이 2개가 사실은 원석이었고 서로 깎고 깎이고 다듬어 가면서 보석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서로에게 최고의 보석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시절을 보니까 빨리 하고 싶은 거겠지만 부모님처럼 지지고 볶고 싸워서 결국엔 둘 뿐인 그런 관계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지금의 내 짝꿍이 과연 나와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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