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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누난나 Mar 10. 2024

만약에~

결혼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일주일 간 회사에서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던 눈누난나(가명)…

(많은 일에 관한 에피소드는 다음 주와 다다음주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회사에서 9월부터 은따를 당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에 딱히 마음 쓰는 편이 아니라서 잘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따를 시키든 말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개전투로 우리 집단에서는 진짜 자신의 몫을 해내는 것 자체가 회사운영에 주축이었다. 그러다 저번 주 월요일..! 오해와 말 전달이 불러일으킨 파장으로 피해를 온몸으로 입게 되었다. 그 일주일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지만 눈물 광광흘리며 어떻게든 견뎌내고 주말에 만난 짝꿍.


주말에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오랜만에 어바웃타임을 같이 보자고 했다. 물론 어바웃타임은 각자 본적만 있고 같이 보는 건 처음이기는 했다. 짝꿍이 성남시 태평역 쪽에서 운영하고 있는 ‘꿈꾸는 다락방’에서 빔을 켜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며 무엇을 느꼈냐는 물음에 나와 짝꿍 모두 ’ 현재를 조금 여유 있게 살고 즐기면서 살아봐야겠다.‘라고 이야기했다. 다 본 후에 짝꿍이 나를 정말 Big hug로 안아주었다. 그냥 안아주는 거겠거니~했는데 일주일간 너무 마음고생하고 혼자 힘들었어서 그런지 눈물이 마구 나왔다. 누구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나로서 정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자꾸 나오는 눈물을 틀어막지도 못하고 어쩌겠는가… 그냥 흘려서 염전을 만들어야지 뭐. 항상 자기 전에 어두운 방에서 베개를 향해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화장실에서 샤워하면서 울곤 했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운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결국 난 짝꿍의 옷 한쪽에 잔뜩 염전을 만들었고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안아주었다. 아무 말 않는 그 상황이 참 위로가 되었다.


왜 우냐고 물어봤으면 눈물이 쏙 들어갔을 거 같은데 그런 거 안 물어봐주고 그저 꼭 안아준 짝꿍이 너무 고맙다. 가장 초라한 내 상황과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조차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아준 그분께 너무 고맙다. (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한 것이긴 한데 내가 울 때 어떤 생각과 기분이었는지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기분 전환을 위해 밖으로 나가 조금 길을 걸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훨씬 나았다. 그렇지만 아직 슬픈 감정이 한가득 있어서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길 가는 사람은 아무도 신경 안 써서 길을 걸으며 눈물 흘리는 건 참 좋다. 사실 이렇게 길 가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나는 종종 보곤 한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울고 나서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괜찮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다가간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 보더라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조금 진정이 된 후 우리는 오늘의 대화를 나눴다.


오늘의 대화 주제

<만약~ 결혼을 한다면~ 상대방에서 약속할 수 있는 딱 한 가지는 뭐가 있을까?>

짝꿍: 나는 눈누난나가 아기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다면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들을 만들어줄 거야. 그래서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그냥 눈누난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약속해.(예전에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더라도 나는 내 경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었음. 그리고 꼭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었음.)

눈누난나: (완전 감동받고 고마웠는데 포커페이스 유지) 음~ 그렇구나.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해 줄 생각이야?

짝꿍: 블라블라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함(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야기를 해줌)

눈누난나:(그분의 진심과 자기가 지키지 못할 말은 절. 대하지 않는 지난 2년간의 그를 보며 지금 한 모든 말들이 진짜 스스로의 다짐이자 나를 사회구성원으로, 그리고 한 여자로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짐. 혼자 감동받아서 또 울 뻔함. 그렇지만 꾹 참음) 오옹 그렇구나…! 알겠어!

짝꿍: 눈누난나는 나를 위해 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뭘 해줄 수 있어?

눈누난나: 내가 뭘 해 줬으면 좋겠어?

짝꿍:(빠직… 눈으로 욕함. 생각하기로 했잖아 서로….) 우이 C

눈누난나: ㅋㅋㅋㅋㅋ알겠어 알겠어 음~

짝꿍: 나는 지금까지 우리 엄마가 내가 뭘 하든 믿고 지지해 줬어. 근데 언제까지나 엄마한테 의지할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래서 눈누난나가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해 주는 거.

눈누난나:(지난번에 올렸던 쿠폰 사진 본 분들이 계시다면 알겠지만 거기에 ’ 지지해 주기‘라는 쿠폰이 있어서 그 얘기를 들으면서 혼자 놀랐다.) 아하 지지해 주기~ 음 그건 내 전문이지 ㅎㅎ

짝꿍: 내가 뭔가를 할 때는 그 이후의 일들까지 생각하고 하는 거라 그 이후의 일들을 아직 모르지만 믿어주고 지지해 주면 좋겠어.

눈누난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해보도록 노력할게. 아니 약속할게!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며 이 하루도 저물어갔다. 오늘도 역시나 의미 있는 대화의 시간들을 가진 거 같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내가 그분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느낀 하루였다. 의지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버둥버둥거렸지만 이미 의지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의지하는 법을 부모님에게 배우지 못해 방어적인 독립적 성향을 갖고 살아왔다. 건강하게 의지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꼭 배워야 하는 부분인데 이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내가 이 사람에게는 왜 의지하고 있었는지,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부모님의 일관적이지 않은 훈육으로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그냥 나 자체로 받아들여주어 의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애하면서 변함없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준 것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의지하면 언젠가는 상처받게 되어 있어서 방어적으로 독립적인 성향을 가진 나였지만 오늘 깨달았다. 이미 많이 의지할 대로 의지하고 있음을. 두렵지만 계속 의지하면서 적당히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려고 한다. 건강하게 의지하는 방법, 다르게 말하면 건강하게 독립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인 것 같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분은 엄마에게는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가족 이외로 누군가와 마음을 깊이 나누며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둘만의 추억들을 쌓아가며 타인에게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주는 또 어떤 대화로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지 궁금하다. 미래에 대한 그림이 하나둘씩 그려지고 있다. 연애하면서 이런 현실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그 상대가 너라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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